美·유럽 대학서 ‘뜨는 한국어, 지는 중국어’

입력 2025-07-21 17:36
부산대 서머스쿨에 참가한 해외 대학 학생들이 지난 9일 한글 붓글씨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등의 대학에서 인기 있는 외국어였던 중국어의 학습 열기가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가 악화하면서 한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어는 K팝 등 한류 열풍에 힘입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일 “한때 전 세계적으로 미래의 언어로 각광받던 중국어에 대한 학습 열기가 수년간의 급속한 성장세 이후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SCMP는 미국현대언어협회(MLA) 보고서를 근거로 2013∼2021년 미국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이 57% 급증했다고 전했다.

클레이턴 두브 전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미중연구소 소장은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동아시아 언어는 한국어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100% K팝”이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대학의 중국어 수강생은 25% 감소했다. 이는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다. 뉴질랜드에서도 2020년 이후 중등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 수가 줄었다.

영국 고등교육통계청(HESA)에 따르면 2023년 영국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대학생 수는 정점을 찍었던 2016년 대비 35% 줄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중국어 학습자가 줄지 않았지만, 다른 언어보다 증가세가 둔화됐다. 독일에선 대학입학 전 중국어 학습 프로그램 참가자 수가 2017∼2023년 700여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스페인어 학습자는 3만명 이상 늘었다.

중국은 200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으로 현대적이며 번영하는 신흥 강국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09년 중국에서 유학하는 미국인의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2013년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젊은이들에게 중국어를 배우라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중국의 경제 둔화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폐쇄적인 정책, 서방 국가와의 긴장, 호감이 덜 가는 국가 이미지 등으로 중국어 학습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다고 분석했다.

두브 전 소장은 “이전에 중국어 학습자 증가를 주도한 주요 요인은 중국의 부상이었다. 중국이 성장하고 있다는 인식은 사람들이 사업, 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면서 “(최근 중국어 학습 열기가 식은 것은)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서 사업기회가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MERIC)의 클라우스 쑹 연구원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엄격한 봉쇄 조치와 장기간 국경 폐쇄 등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며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는 현재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대만으로 중국어를 공부하러 가는 외국인이 코로나19 이후 늘어났다는 점에서 중국의 통제 위주 환경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대만 교육부에 따르면 2023년 대만 내 대학 부설 어학원으로 중국어를 공부하러 온 외국인 수는 3만6350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정점이었던 2019년 대비 12% 증가했다.

쑹 연구원은 중국이 국가안보 관련 통제를 강화함에 따라 환경이 제한적으로 변하면서 본토에서 중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을 위한 공간이 “극적으로 쪼그라들었다”면서 “대만은 오히려 매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