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의 쌍둥이 임신부 A씨는 지난해 2월 새벽 갑작스러운 자궁 출혈을 겪었다. 하지만 응급실 90곳에서 신생아 중환자실과 전문의 부족을 이유로 ‘수용 곤란’ 통보를 받았다. 결국 300㎞ 떨어진 경남 창원으로 가야 했다. 길에서 보낸 시간은 2시간 42분이었다.
부산 영도구의 B씨는 지난해 5월 갑작스러운 혈변과 오한으로 구급차를 불렀다. 의사 부족 등의 이유로 응급실 42곳에서 외면 당했고, 결국 2시간을 길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B씨는 응급환자분류기준(KTAS)에서 최중증인 1단계로 악화됐다.
지난해 응급실을 찾아 2시간 이상 길거리를 헤맨 응급 환자가 하루 평균 17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시간 단위로 분석한 소방청의 첫 통계다.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병원 수용 지연 시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송 시간이 2시간을 초과한 사례는 전년(3233건) 대비 1.9배 늘어난 6232건이었다. 하루 평균 17명 꼴이다. 올해는 6월 기준 3877건인데 현재 추이라면 전년 건수를 가뿐히 넘어설 전망이다. 이송 시간은 구급대원이 환자를 데리고 현장에서 출발해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구급대원이 현장에 머무는 ‘체류 시간’도 급증했다. 환자를 이송할 응급실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탓이다. 체류 시간이 2시간을 넘긴 경우는 지난해 815건으로 2023년 452건보다 1.8배 증가했다. 1~2시간인 경우도 전년 3882건 대비 2배 늘어난 7890건이었다.
김성현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소방지부 구급국장은 “응급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찾느라 현장에서 1~2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응급실을 찾는 전화를 오래 돌릴수록 환자를 이송할 병원의 거리도 멀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진료권역을 중심으로 설계된 응급의료체계가 붕괴하는 신호란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진 부족이 사태를 키웠다.
이건세 건국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진료권역별로 응급기관은 통상 30분~1시간 이내에 접근 가능하도록 배치돼 있다. 2시간 초과 이송은 응급환자가 발생한 지역 안에서 대응이 안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진료권역이 제기능을 못하면 체류·이송 시간은 기약 없이 늘어나게 된다. 다른 권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병원들이 권역 밖 환자 수용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담당 권역 안에서 발생한 응급상황과 환자에게 우선순위를 두게 마련이다. 권역 밖에서 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 수용 요청이 들어오면 무리하게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역 내 응급의료가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못해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응급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