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소련 연방의 문이 열리자마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무명 땅에 첫발을 디딘 한국인 4가정. 당시 그 땅에는 기독교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곳에서 91년부터 20년 가까이 선교한 주민호 기독교한국침례회 해외선교회장은 “고려인 사역을 위해 러시아 침례교단과 협약을 맺고 들어갔지만 결국 독자적 사역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주 회장을 비롯한 선교사들은 카자흐어 위구르어 키르기스어 등 각 민족의 언어로 다가가며 최초의 신자들을 만들어갔다.
34년이 흐른 지금 지역교회 113개, 전체성도 5000여 명으로 구성된 중앙아시아 침례교총회가 설립됐다. 놀라운 것은 선교사들이 직접 개척한 교회는 25개에 불과하고 나머지 87개는 현지인들이 스스로 개척했다는 사실이다.
성공 비결은 ‘동반자 선교’ 철학에 있었다. 주 회장은 “선교사는 아기를 낳는 어머니가 아닌 아기 낳는 것을 돕는 산파 역할”이라며 “선교사는 파송 받은 외부인으로서 해당 국가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들은 4P 단계(Pioneer-Parent–Partner–Participant)를 거치며 단계적으로 사역을 현지인에게 이양했다. 주 회장은 “선교사들이 ‘십의 삼조’를 드리며 본을 보였더니 현지 성도들도 자발적으로 드리기 시작했다”며 재정 자립이 핵심이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성공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 세계 선교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21일부터 23일까지 강원도 평창 켄싱턴호텔에서 ‘뉴 타겟(New Target) 2030과 한국 선교의 방향’을 주제로 연석 정책회의를 개최했다. 교단 선교부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한 이번 회의에서는 한국 선교계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이 강조됐다.
강대흥 KWMA 사무총장은 기조 발제에서 한국 선교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그는 “한국이 2만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했지만 선교 전략과 정책의 체계적 적용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각 교단과 선교사들이 개별적으로 사역하면서 전체적인 선교 효과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선교사들이 현지 상황과 교단의 전략적 방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사역하는 경우가 많아 지속할 수 있는 선교 생태계 구축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런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 선교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나온 방안이 선교사와 현지교회가 협력하는 ‘동반자 선교’다. 이를 위한 7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했다. 선교사는 지역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한시적인 조력자 역할을 하며 선교사 사역이 현지 교단의 요청과 필요에 기반을 둬 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는다.
통일 후 북한교회 복원이라는 중대한 과제도 제기됐다. 강 사무총장은 장대현교회 재건 문제를 구체적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주기철 목사가 사역했던 장대현교회를 북한에 재건하려는 교단이 무려 6곳에 이른다”며 “통일 후 교단 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통일 이후 북한교회 회복을 위한 7대 원칙’을 제시했다. 지하교회의 선도적 역할 인정, 한국교회의 섬김적 자세, 교단 간 협력 모델 마련, 교단주의 지양, 선교적 확장 기회 창출, 민족적 동질성 회복, 본질 중심의 교회 회복 등이다.
강 사무총장은 북한 선교에 있어 “북한에서 교단 간 경쟁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에서 이해하는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식의 교회 개척 개념이 북한에 적용되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한국교회가 북한의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풀 픽쳐(full picture)’를 갖고 동반자적 선교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KWMA는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뉴 타겟 선교’ 프로젝트의 하나인 디지털·이주민·다음세대 선교 등 유의미한 내용을 보고하는 시간도 가졌다. 참석자들은 동반자 선교에 대한 깊이 있는 토의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도 한철호 미션파트너스 대표, 울산경남세계선교협의회(UGWMA) 사무총장 손승호 선교사 등이 한국 선교계의 현주소와 과제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평창=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