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상태’ 법원 형사합의부…“특검 재판 들어오면 장기화 불가피”

입력 2025-07-21 05:00 수정 2025-07-21 05:00

“부도 직전의 회사와 비슷하다.”
서울중앙지법에 소속된 한 판사는 21일 현재 형사합의 재판부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재판부의 사건 부담이 한계치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일주일 중 4일을 공판 진행에 쏟아 부으며 밀려드는 주요 사건을 겨우 막아내는 실정이다.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이 제출하는 서면 검토는 재판이 끝난 저녁 시간과 주말로 넘어가기 일쑤다. 이 관계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관련 재판을 맡은 재판부든, 다른 일반 사건들을 떠안게 된 재판부든 업무량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해병)의 공소제기가 본격화되면 재판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되는 비상계엄 관련 재판들은 이미 장기전이 예고된 상황이다. 윤 전 대통령 내란 재판만 하더라도 최초 신청된 증인 38명을 심리하기 위해 연말까지 매주 기일을 잡아둔 상태인데, 지난달 출범한 내란특검은 여기에 72명의 추가 증인까지 신청했다. 내란 사건을 맡고 있는 형사25부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재판 때마다 “갈 길이 멀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기존 재판뿐만 아니라 12·3 비상계엄 관련 추가 기소된 사건들도 속속 법원으로 넘어오고 있다. 특검이 추가기소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사건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사건은 형사34부(재판장 한성진)와 형사21부(재판장 이현복)에 배당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특검이 기소하는 사건들이 밀고 들어오면 기존에 심리하던 일반 사건 일부를 어쩔 수 없이 뒤로 미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검 관련 재판이 아니더라도 서울중앙지법의 형사합의부는 이미 포화 상태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에 접수된 사건 수는 1574건으로 2023년(1228건) 대비 28% 증가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단독 재판부가 그동안 처리해오던 보이스피싱 사건들이 대거 합의부로 넘어온 점이 꼽힌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처벌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으로 2023년 11월부터 보이스피싱 형량은 1년 이상 징역으로 강화됐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1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사건”을 원칙적으로 합의 재판부에서 심리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이후 전국 지방법원 형사합의부에 접수된 피고인 중 17%(지난해 7~9월 기준)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관련 혐의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보이스피싱 사건의 경우 형사합의부 배당에 예외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원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미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충실한 재판 심리를 위해 보이스피싱 사건을 단독 재판부에서도 심리할 수 있도록 예외 범죄에 추가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범죄 근절을 위해 형량 강화는 필요하지만 보이스피싱 수거·인출책 재판의 경우 판사 1명이 단독 재판부에서 문제없이 처리해온 사건”이라고 말했다.

민사합의 재판부처럼 형사 사건도 상대적으로 단순한 사건은 단독 재판부에서 심리할 수 있도록 재량(재정단독)을 부여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장기적으로는 법관 증원 상황에 맞춰 형사합의부를 증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형사합의부는 2018년 13곳에서 올해 16곳으로 늘어났지만 재판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호소가 나온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