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은 화난 표정이고 또 한 명은 애써 미안한 표정이다. 이들은 초등학생을 둔 어머니들인데, 학교폭력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어머니로 법원 조정실 앞에서 만났다. 사건이 일어나고 3년 만의 만남이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가해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받은 처분에 만족하지 못했다. 학폭위가 학교폭력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가벼운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 학생의 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원래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누구보다 친한 사이였다. 또래 아이들처럼 갈등이 생기면 멀어지다가도 다시 쉽게 친한 친구가 되었다. 사달은 3학년 개학 날 가벼운 장난에서 시작되었다. 쉬는 시간에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이 입은 상의 모자를 잡아당겼다. 가해 학생이 잡아당기지 말라고 여러 차례 말하였지만, 계속 당기자 화가 나서 주먹으로 피해 학생의 눈을 치고 말았다.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했으나, 이미 엎어진 물이 되었다.
피해 학생은 이날 집에서 부모에게 가해 학생이 주먹으로 눈을 친 일을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부모는 몹시 화가 난 상태에서 그간 가해 학생과 있었던 일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피해 학생은 마지못해 가해 학생이 욕을 한 일, 1000원을 빌려 가서 갚지 않은 일, 부모를 험담한 일, 놀이터에서 밀어서 넘어뜨린 일 등을 말하면서 가해 학생이 무섭다고 했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피해 학생을 병원에 데려가서 진단을 받았다. 처음 병원에서는 불안과 초조감 정도 나타나는 가벼운 증상으로 진단했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피해 학생 어머니는 여러 병원을 들러 진단을 받았는데, 이 중 한 곳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고 판정했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진단서를 들고 학교에 찾아가 가해 학생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학폭위의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이 가볍다고 생각해 소송까지 낸 것이다.
소송은 감정 때문에 길어졌다. 피해 학생의 손해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정신 감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 학생이 아직 어리고 피해 정도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아서인지 감정을 하겠다고 나서는 병원이 없었다. 겨우겨우 한 대학병원이 감정을 받아줬다. 그러나 피해 학생의 어머니 입장에서는 감정 결과가 신통치 못했다.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정도로 나을 수 있다고 봤다. 감정 결과가 나오자 법원은 이 사건을 조정에 회부했다. 그렇게 두 어머니가 법원 조정실 앞에서 만난 것이다.
조정이 시작되었다. 조정실 앞에서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던 가해 학생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이에 줄곧 화난 표정이었던 피해 학생의 어머니도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펑펑 울었다. 그리고 두 어머니의 진심 어린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두 어머니가 눈물로 화해하면서 조정은 가해 학생의 어머니가 피해 학생의 어머니에게 그동안의 치료비를 주는 선에서 성립되었다. 조정실을 나와서 두 어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두 학생이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로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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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