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그동안 마땅히 얘기할 곳을 찾지 못했던 국회의원 갑질에 대한 보좌진들의 제보와 사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원이 보좌진 개인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어 피해를 외부에 쉽게 발설하지 못하는 탓에 그간 ‘의원님 갑질’은 소문만 무성했다. 보좌진들은 국회의원 인식 개선과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한 정당의 보좌진협의회장을 역임한 A씨는 20일 국민일보에 “보좌진협의회에 들어오는 신고 내역엔 자취방 빨래를 부탁한다거나 자전거를 가져다 달라는 등 지극히 사적인 일로 지시한다는 신고와 상담 사례가 너무 많다”고 털어놨다. A씨는 “과거에는 ‘의원 집에 가서 강아지 오줌을 누게 하라’, ‘의원의 별장에 가서 잔디를 깎아라’ 등 황당한 사례가 많았다”며 “직접적인 욕설과 폭언 등 인격적 모욕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보좌진 B씨는 과거 미혼이었던 모 의원이 ‘자신은 집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며 “아침마다 의원실에서 쌀밥을 짓게 했다. 의원실 복도에 아침마다 갓 지은 밥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말했다.
국회 직원 인증을 받아야 쓸 수 있는 SNS 익명 게시판엔 지난 14일 “수행비서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원 배우자와 자녀들을 케어하고, 주말엔 의원과 함께 골프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의원 집안 경조사에 보좌직원이 동원되어 때로는 혼주 측이, 때로는 상주 측이 되어 실무를 맡기도 한다. 가족 휴가지 예약과 교통편 준비는 이제 사적 업무 영역으로 취급되지도 않는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각 정당 보좌진협의회에 따르면 의원 갑질의 경우 특정 의원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의원이 보좌진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의원은 그대로 있고, 갑질을 버티지 못한 보좌진만 계속 바뀌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에 따르면 강 후보자의 의원실 역시 꾸준히 갑질 문제가 거론되던 대표적인 의원실 중 하나다.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이런 의원실을 일종의 ‘블랙리스트’처럼 인식한다고 한다. 전직 보좌진협의회장 C씨는 “모집 공고가 오래 떠 있거나 자주 모집 공고가 올라오는 의원실이 소위 블랙리스트화 의원실”이라며 “그런 곳에서 1년 버텼다고 하면 다른 의원실로 옮길 때 물어볼 게 없을 정도로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궂은일도 잘 참고 버텨낸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의원 갑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현재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C씨는 “국회라는 직장의 특성상 인사권이 국회의원에게 달려 있는데, 국회의원을 신고하는 순간 소문이 다 퍼져 사실상 이 업계를 떠나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신고를 접수해도 제보자 특정, 2차 가해 등의 우려 때문에 대응이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A씨는 “국회 내에서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대응한다는 얘기가 돌면 제보자가 특정돼 2차 가해가 될 수 있어 개입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의원 측에)관리를 잘해주고 주의를 했으면 좋겠다 정도로 얘기한다”고 말했다.
국회 직원 중에서도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유독 많이 갑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인권센터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3년 6월 발표한 ‘제1회 국회인권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232명의 국회 직원들 중 ‘상사·동료의 사적인 업무 부여’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의원 보좌직이 19.4%로 가장 높았다. 일반행정직과 행정·기술직군, 기타 직군은 각각 2.4%, 9.0%, 3.8%에 그쳤다. ‘욕설’이나 ‘불필요한 추가근무 강요’ 경험도 20%대로 타직군 대비 2배 이상 높았다.
한웅희 김판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