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동부 필라델피아에 자리잡은 한화 필리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 델라웨어강에 인접한 대형 부지, 그 중심부에 자리 잡은 4번 도크(dock) 레일 위로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조선소의 심장과 같은 거대한 주황색 골리앗 크레인이 서서히 지나갔다. 660t 규모에 대형 건물 높이인 크레인에는 주황색 바탕에 한화의 영문명 ‘Hanwha’가 크고 선명한 흰 글씨로 쓰여 있었다.
길이 330m, 폭 45m로 미국 내 최대 규모의 도크에서는 미국 해사청이 발주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 건조가 진행 중이었다. 마침 취재진이 방문한 이날 최근 건조를 완료한 해저 암석 설치선(SRIV)도 도크를 떠나 강 수면으로 미끄러지듯 서서히 이동하고 있었다. 원래 올해 12월 진수 예정이었는데, 한화오션이 조선소를 인수한 뒤 건조 기간을 5개월이나 단축해 이날 진수하게 된 것이다.
한화 필리조선소의 현재 수주 잔고는 국가안보다목적선박 3척, 해저 암석 설치 선박 1척, 컨테이너선 3척 등 총 7척이다. 앞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뿐 아니라 해군 함정의 블록이나 모듈 공급, 최종적으로는 해군 함정 건조를 위한 준비까지 차근차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데이비드 김 필리조선소 대표는 “(미국에서) 200억 달러 이상이 추가로 해군 함정에 대한 국방비 지출로 사용된다. 여기에는 전투함뿐만 아니라 지원함도 포함돼 있고, 그 지원함 중 많은 것들이 우리가 건조할 수 있는 함정”이라며 “지금 해군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해군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제공요청서(RFI)를 제출했다. 단순히 논의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2~3개 RFI를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이 지난해 1억 달러(약 1400억원)를 투자해 12월 필리조선소를 인수하기 전까지 이곳에서는 매년 1~1.5척의 배가 건조됐다. 미국 동부 최대 조선소로 평가되지만 건조 속도와 기술력은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의 공정 속도와 도크 회전율을 높여 이곳에서 조만간 연간 4척의 배를 건조하고 10년 안에 연간 10척 이상을 건조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이종무 조선소장은 “선박은 공장에서 블록을 만든 뒤 도크에서 조립해서 진수하는 방식으로 건조되는데 도크 주변에 생산 공장을 건립하면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생산성과 도크 회전율을 향상하면 충분히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도크에서 블록 하나를 탑재하는 데 기존 방식으로는 3일이 걸렸다면 현재는 4시간으로 단축했다는 게 이 소장 설명이다.
한화오션은 현재 거제 등 전체 조선소에서 연간 40척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은 “한화오션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한화 필리조선소에 전수해 공고한 한·미 조선 동맹에 기여하고, 북미 조선·방산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필리조선소에서는 한화오션에서 파견된 인력 50명을 포함해 전체 1800명이 근무 중이다. 현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습생 교육 과정도 진행 중이다. 올해 120명의 수습생을 채용하는 등 5년간 1000명의 현지 조선 인력을 배출한다는 게 한화오션의 계획이다. 이날 교육 현장에서 만난 수습직원 제임스는 “부스에서 기본 용접 교육을 배우고 있다. 임금도 괜찮은 편”이라며 “시간당 23달러 정도를 받는다. 6개월 정도 이후 임금 인상도 검토된다”고 말했다. 수습 교육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연봉 기준 5만 달러 정도를 받는다.
교육 담당자인 마이크 지안토마소 인사팀 부사장은 “한화오션에서 인력을 파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며 “견습 프로그램은 수습생과 그 가족에게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다. 숙련 기술과 급여, 복지, 그리고 승진과 고용 안정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조선업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피해갈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철강에 50%의 품목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한화 필리조선소는 철강 수급처를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미국까지 다변화해 철강 관세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필라델피아=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