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에 발가락 녹아내려도…‘뭉툭한 네발’ 황구의 기적 [개st하우스]

입력 2025-07-19 00:05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만날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산불이라카믄 나무 한 그루씩 옮아붙아가 번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이었어요. 시뻘건 밀물 밀려오는 거 맹키로 불씨 섞인 돌풍이 막 불어옵니데이. 식당이고 농장이고 집이고 다 타분기라. 내가 개 3마리 키우는데 무서우면 어데 숨는 기 본능인지 불라도 다 건물 구석에 숨어가 비지를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사람들만 빠져나왔어요. 집은 잿더미가 됐는데 억수로 운이 좋았는지 야들(개들)이 살았다카더라고요. 근데 불기운에 그을려가 코가 녹고 했더라고요.”
-지난 3월 영남 산불 피해 주민 최미영(63)씨

지난봄 영남 일대를 덮친 산불은 서울 면적의 80%에 달하는 숲과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인명피해는 무려 180여명이었습니다.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피해도 커서 1600마리 넘게 생명을 잃었습니다. 피해 주민 최씨의 말처럼 화마에 당한 동물 상당수는 주인이 목줄을 풀어준 뒤 불을 피해 도망갔다가 도리어 위험에 빠진 경우라고 합니다. 안동에서 구조된 황구 ‘막내’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다만 막내는 살아났습니다. ‘억수로’ 운이 좋았던 겁니다.



안동 산불에서 살아남은 황구 '막내' 기적의 생존

지난 5월 27일 경기도 광주의 500평 규모 민간 애견훈련소. 훈련소 측의 배려로 동물구조단체 코리안독스가 산불 구조견들의 임시보호소로 쓰는 곳입니다. 지난봄 영남 산불 피해지에서 구조한 개 60여 마리가 지내고 있는 훈련소 운동장에 들어서니 멀리서 황구 한마리가 뒤뚱뒤뚱 다가왔습니다. 한 살쯤 됐을까요. 15㎏ 남짓 제법 큰 덩치의 황구는 네 발에 보호용 붕대를 감은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산불에서 살아남은 막내입니다.

막내는 마을 회관을 제외한 마을의 모든 건물이 산불에 전소할 만큼 피해가 컸던 안동 국곡리의 한 민가에서 구조됐습니다. 당시 불길은 강풍을 타고 불과 2~3분만에 민가들을 집어 삼켰고, 주민들은 살림을 챙길 여유도 없이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막내의 견주인 60대 이모씨는 급박한 와중에도 막내의 목줄을 풀어줬는데요. 이렇게 목줄을 풀어준 가정견 상당수는 건물 틈이나 나무 사이로 도망갔다가 도리어 화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막내는 불바다가 된 도로와 뒷산을 도망다니며 불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3월 영남 산불 현장의 처참한 모습. 산을 타고 번지던 불길은 강풍을 타고 불과 2~3분만에 민가를 덮쳤다. 주민들은 대피하면서 기르던 개들을 풀어줬지만, 사방에서 날아든 불길에 크고 작은 화상을 입었다. 제보자 제공

뭉툭해진 네 발로 재롱…막내의 가족을 구합니다

막내는 산불이 진화된 뒤 뼈대만 남은 집터를 배회하다 출동한 코리안독스 활동가에게 구조됐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막내의 네 발바닥은 녹아내렸습니다. 나뭇가지 등이 불타서 도로가 불판처럼 달궈진 탓입니다. 훈련소에서 지내고 있는 나머지 구조견들도 막내처럼 절반 이상은 발바닥과 코, 옆구리 등에 크고 작은 화상을 입어 치료 중입니다. 영남 산불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펼쳤던 코리안독스 김복희 대표는 “구조 당시 불붙은 솔방울과 나뭇가지가 도로를 뒤덮어 차량 타이어도 녹아내릴 정도로 도로가 뜨거웠다”면서 “막내는 다행히 발바닥 이외에 크게 다친 곳은 없다. 치료는 잘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막내의 앞발바닥은 특히 발가락이 녹아 뭉툭한 형태만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기어코 사람 곁에 다가와 ‘앉아’ ‘엎드려’ ‘손’ 등 재롱을 부리고 쓰다듬을 즐기는 녀석. 동물단체 측에서 화상 치료와 함께 사회화 교육도 꾸준히 병행한 덕분입니다.

산불로 인한 부상을 치료하고 입양 교육을 받는 황구 막내의 모습.

현재는 발바닥 화상이 아물어 붕대를 풀고 실내와 마당을 오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화재로 거처를 잃은 막내의 보호자는 이후 막내의 소유권을 코리안독스에 넘겼다고 합니다. 코리안독스 김 대표는 “보호자는 이번 산불로 집이 전소해서 막내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며 “좋은 가족을 찾아주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입양은 큰 걱정거리입니다. 화상은 치료하더라도 흉터가 남아 심한 화상을 입은 개는 이후 입양자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화상이나 흉터가 있는 개는 국내 입양이 어려워 해외에서 입양자를 주로 모집한다”면서 “다만 막내는 성격이 좋고 어린 데다 영리해서 화상이 아물면 국내에서 입양자를 모집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악의 산불 속에서 구조된 황구 막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산불 현장에서 기적처럼 구조된 황구, 막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 1살 수컷, 15kg, 중성화 완료
- 사람을 좋아하고 순함. 다른 동물과 사회성이 훌륭함
- 잔짖음 없고, 배변패드를 잘 사용함
- 발 부상이 회복 단계이므로, 흙바닥 산책은 피하는 중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코리안독스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https://linktr.ee/kdsrescue

■막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60번째 견공입니다(112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