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70) 시인이 시집 ‘죽음의 자서전’의 독일어 번역본(‘Autobiographie des Todes’)으로 독일 세계 문화의 집(HKW)이 수여하는 국제문학상(Internationaler Literturpreis)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 최초 수상이다.
HKW는 17일(현지시간) 시상식을 열고 올해 국제문학상 선정자로 김혜순 시인과 독일어로 옮긴 번역가 박술·울리아나 볼프를 만장일치로 호명했다. 김혜순은 튀르키예의 도안 아칸르, 캐나다의 세라 번스타인, 우크라이나의 안나 멜리코바, 프랑스의 네쥬 시노, 미국의 제스민 워드 등과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심사위원단은 “‘죽음의 자서전’은 ‘죽음의 모국어’를 언어로 옮긴 것”이라며 “모든 인간의 연약하고 신비롭고 독특한 내면세계뿐 아니라 언어 너머 초월적인, 역설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사후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최종 후보 발표 당시 심사위원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데니즈 우틀루는 “‘죽음의 자서전’에 수록된 시들은 죽음의 모국어로 생성된 시들의 번역본”이라며 “이 시어들은 저승의 문턱에서 만들어지는 울림을 그대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기적”이라고 호평했다.
김혜순은 독일에서 열린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화상으로 “번역자 박술과 울리아나 볼프, 심사위원들, HKW, 출판사 피셔의 대표 포겔과 편집자 마들렌, 그리고 낭독 행사를 기획한 시 문학관의 마티아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6년 출간된 ‘죽음의 자서전’은 시인이 2015년 지하철역에서 쓰러진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이후 세월호 사태 등 사회적 비극을 떠올리며 49편의 시를 엮어 완성했다. 올해 2월 독일 출판사 피셔가 대산문화재단의 출판 지원을 받아 번역본을 펴냈다. 공동 수상자인 번역가 박술은 서울 출생의 독일 힐데스하임대 철학과 교수로 국내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베를린 출생의 울리아나 볼프도 시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앞서 김혜순은 2019년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시문학상’을,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시집 ‘날개 환상통’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HKW 국제문학상은 그해 독일어로 번역된 뛰어난 현대문학에 수여하는 상으로 2009년 시작해 비교적 역사가 길지 않지만, 번역문학 분야에 특화한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는다. 상금은 총 3만5000유로(약 5600만원)이며 작가에게 2만유로, 번역가에게 1만5천유로가 각각 주어진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은 2017년 ‘채식주의자’ 독일어 번역본으로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