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노력해도 아무 결과가 없다면 누구든 이런 고민을 하기 마련입니다.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포기해야 하나.’ 오늘 소개할 ‘기독 고전 맛집’ 5번째 책 ‘山비’(로뎀북스)의 주인공 제임스 O 프레이저(1886~1938)도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임페리얼칼리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그는 당시 전도유망했던 전공과 어릴 때 두각을 보인 피아노 관련 진로를 포기하고 22세에 중국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태국과 싱가포르, 미얀마와 중국 상하이를 거쳐 남부 내륙의 윈난성에 도착한 프레이저는 험준한 협곡에 사는 리수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6년여간 힘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리수족들은 자기 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이 전하는 말에 잠시 흥미를 보이다가도 기존에 믿던 주술이나 미신, 주변 시선 때문에 결국 기독교를 거부합니다.
이들 선교를 위해 어떤 궂은일도 마다치 않던 그였지만 개종자가 나오지 않자 크게 절망합니다. 선교지에 온 지 5년여가 되던 시점, 프레이저는 당시 뭔가를 할 때마다 내면에서 부정적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회고합니다. ‘아무 소용없어.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상상에 불과한 거야. 돌아가서 실수였다고 인정하는 게 나을 거야.’ 리수족은 물살이 거센 누장강 계곡 인근에 거주했는데요. 이들은 외줄을 이동수단 삼아 이를 타고 협곡을 오갔습니다. 낙담과 우울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이 협곡에 뛰어들 생각도 여러 번 했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지속과 포기, 오리무중 속 갈림길 앞에서 그는 더 절실히 기도하는 편을 택합니다. 프레이저는 매일 일기를 쓰며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추스릅니다. “결과 없는 걸 슬퍼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하나님의 신실함 안에 쉴 것이다.”(1916년 1월 4일) “아침 예배에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여리고 성벽은 믿음으로 무너졌다.… 여기서 하나님의 방법을 본다. 그 일이 무엇이든 ‘기도’ ‘믿음’ ‘인내’ 세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같은 해 1월 16일)
최근 이 책으로 설교한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는 “그가 수년간 기도하며 붙든 건 눈앞의 결과가 아닌 하나님이 반드시 일한다는 믿음”이라며 “하나님은 바로 그 믿음을 평가한다”고 설명합니다.
꾸준한 기도로 영적 침체기에서 벗어난 그는 리수어를 표기하기 위해 로마자를 뒤집은 ‘프레이저 문자’를 도입해 성경과 찬송가 교리 문답서를 번역·출간합니다. 이는 리수족의 문맹률을 낮추고 복음화율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합니다. 추후 그는 영국 정부 제안으로 리수족의 기원과 이민 역사, 관습 등을 담은 ‘리수 안내서’(1922) 등을 펴내 이들의 문화 보존에도 큰 족적을 남깁니다.
42세에 다른 지역 선교사의 딸 록시 다이먼드와 결혼하고 리수족 선교를 이어가던 프레이저는 52세가 되던 1938년 두 딸과 임신한 아내를 두고 악성 뇌 말라리아로 숨집니다. 책은 그의 둘째 딸 에일린이 아버지와 동료의 기록을 토대로 쓴 것입니다. 프레이저 사후 리수족 교회는 계속 부흥했습니다. 2007년 현재 윈난성 내 리수족 교인은 20만여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리수족 기독교인이 그를 위해 세운 비문 일부입니다. “프레이저는 고난으로 많은 눈물을 먼저 뿌려야 했다. 하지만 커다란 추수를 거둔 삶이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