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챗봇이 법률 상담을 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관련 제도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국회에서 이러한 입법 간극을 메우기 위한 ‘리걸테크’ 육성 법안이 발의돼 그간 사각지대에 놓였던 AI 기반 법률 서비스의 제도권 편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과거 ‘로톡(변호사 광고 플랫폼) 사태’를 비롯해 AI의 법률 업무를 반대해왔던 변호사 단체의 거센 반발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17일 정보통신(IT)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호사협회 입법지원실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지난 3일 대표발의한 ‘법률정보기술산업진흥 및 법률소비자 편익 증진에 관한 법률안’(리걸테크진흥법)에 대한 법률 적합성 논의를 시작했다. 이르면 다음 달 중으로 관련 법안에 대한 대한변협의 공식 입장이 나올 예정이다.
이 법안은 리걸테크의 진흥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 핵심이다. 리걸테크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법률정보기술을 활용하는 소비자의 편익을 높이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 의원은 “법률정보기술산업은 기업과 개인의 법률 이용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에도 법적·제도적 지원 부족으로 성장 가능성이 제한받고 있다”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5년마다 법률정보기술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법률정보기술산업에 관한 실태조사를 2년마다 실시해야 한다. 또 법령, 판례 등 법률 공공데이터의 개방이 확대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IT업계에서는 이번 입법 논의가 리걸테크 활성화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단순한 규제 정비를 넘어 기술 혁신과 법적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려는 실효성 있는 움직임이란 분석이다. 동시에 AI 계약서 자동작성, 판례 검색 자동화, 법률 상담 챗봇, AI 소송 결과 예측 등 그동안 위법 소지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서비스들이 제도권 안에서 활용될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법률데이터에 대한 광범위한 개방은 국내 리걸테크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대한변협 등 법조계의 반발이 이어질 전망이다. 대한변협은 로톡 사태 등에서 리걸테크 서비스 도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드러내 왔다. 변협은 변호사법과 내부 규정을 들어 변호사가 아닌 자가 법률 사무를 수행하는 행위와 수사·행정기관의 처분, 법원 판결 등의 결과 예측을 표방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에 따라 로톡은 2021년 형량 예측 서비스를 종료했고, 넥서스AI와 대륙아주가 합작해 개발한 AI 챗봇 ‘AI대륙아주’도 지난해 10월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리걸테크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변호사의 직역 보호와 법률 서비스의 공공성 유지가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정보통신법학회장인 이성엽 고려대 교수는 “변호사의 업무로 지정한 법률 사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법적으로 가능한 AI 법률 서비스 범위가 달라질 것”이라며 “전문가 의견이 필요 없는 형식적인 법률 문서 작성 등은 AI에게 맡기고 고차원의 자문 영역을 변호사 고유의 업무로 지정하는 등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