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과 만나 “우리 사회가 생명보다 돈을 더 중시하고 안전보다는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 잘못된 풍토들이 있었다”면서 “국민이 보호받아야 할 때 국가가 그 자리에 있지 못했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16일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를 열고 지하차도 참사, 이태원 참사, 12.29 여객기 참사, 세월호 참사 유가족 200여명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이 참사 유가족을 한자리에 초청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국가의 첫째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국가가 그 자리에 없었다. 정부를 대표해 공식적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사죄의 말로 상처가 다 아물 순 없지만, 다시는 정부의 부재로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현장의 유가족들은 흐느끼거나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사죄의 말씀으로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리도 없고 유가족들의 가슴속에 맺힌 피멍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오늘 유가족들의 말을 충분히 검토하고 가능한 모든 범위 안에서 필요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유가족 대표들은 한목소리로 철저한 수사와 그에 따른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다. 최은경 오송 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재난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국회의 국정조사가 여야 합의로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대통령께서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특별법 개정을 통한 진상 규명, 항공철도조사위원회의 독립,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유가족들의 조사 과정에 대한 알 권리와 신뢰를 보장해 달라”고 전했다.
아울러 유가족들은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도 이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송해진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다가오는 참사 3주기 추모행사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겠다는 국가의 의지를 보여달라”고 말했다. 김종기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참사 이후 국가가 피해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벌인 사찰과 진상규명 방해, 2차 가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는 약 2시간 가까이 유가족의 질문에 대통령과 각 부처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강희업 국토부 제2차관, 김광용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김성범 해수부 차관 등 관계부처 책임자들도 함께 배석해 답변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중에서는 지난 4월 이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되시면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는 쪽지를 직접 건넨 한 아버지가 참석했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 중에는 딸의 희생 후 실직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유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도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사고도 마음 아픈데 사고 후의 정부 당국자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더 마음 아팠을 것”이라며 “안전한 사회, 돈 때문에 생명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사회, 목숨을 비용으로 치환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미처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한 유족들을 위해 영빈관 입구에 ‘마음으로 듣겠습니다’라는 편지지를 준비해 대통령에게 바라는 의견을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