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5 KBO리그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8회 말 LG 더그아웃 구석에서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는 선수가 있었다. 팀의 ‘4번 타자’ 문보경이었다. 코치진과 선배들이 옆으로 다가가 달래기를 반복했다. 문보경은 이날 경기에서 안타 없이 실책 2개를 저질렀다.
그랬던 문보경은 다음 날 돌변했다. 2:7로 뒤진 3회 말 타석에 들어선 그는 KIA 김도현의 1구 체인지업을 받아쳐 좌월 3점 홈런을 터트렸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문보경은 포효했다. 최근 경기장에서 만난 그는 “전날 경기에서의 찜찜함이 모두 씻겨내려 가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원래 눈물이 많냐는 질문엔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LG 팬들 사이에선 ‘문보경이 울고 난 뒤에 경기력이 좋아진다’는 일종의 징크스가 유명하다. 이를 두고 울보와 문보경을 합친 ‘울보경’이라는 애정 섞인 별명도 생겨났다.
문보경은 올 시즌 전반기 중반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5월까지 타율이 0.315(200타수 63안타)에 달했으나 6∼7월 들어 0.234(107타수 25안타)로 곤두박질쳤다. 6월 10∼18일에는 7경기 연속 무안타 늪에 빠지기도 했다. 문보경은 “유독 슬럼프에 빠지면 길게 가는 편”이라며 “경기력을 되찾기 위해 경기 후 밤새 비디오 분석을 하는 것은 물론, 훈련 방식까지 바꿔가며 안간힘을 썼다”고 털어놓았다.
2019년 데뷔 후 꾸준히 성장세를 그려왔던 것을 고려하면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주전 자리를 꿰찬 문보경은 이듬해 구단 역사상 최연소 3할 타자에 등극했다. 2023년에는 2년 연속 3할과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고, 지난해에는 ‘3할-20홈런-100타점’ 클럽에 가입했다. 오랜 시간 3루가 약점으로 꼽혔던 LG로서는 혜성 같은 존재다. 그는 “해마다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부진에도 올 시즌 리그 주요 타격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전반기 성적 0.287, 14홈런, 63타점을 기록하며 홈런과 타점 부문 각각 9위와 3위를 달리고 있다.
어린 나이에 맡은 4번 타자라는 중책에 대해서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살면서 4번 타자를 해본 적이 없다”며 “나만 부진하면 그나마 괜찮은데, 팀 성적까지 저조하니 중심 타자로서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막강한 트윈스 타선에서 4번 타자를 맡고 있다는 건 엄청난 자부심”이라고 힘줘 말했다.
후반기 목표를 묻자 문보경은 주저 없이 “LG 우승”을 외쳤다. 개인 타이틀 욕심에 대해선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원래 전 경기 출장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는데, 무릎 부상으로 달성하지 못하게 됐다. 후반기라도 모든 경기에 나가고 싶다”며 “내가 제 몫을 다하다 보면 팀도 우승을 노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최원준 기자 1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