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민수(49)와 임윤찬(21). 두 사람의 인연은 2017년 13살이던 임윤찬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 입학해 손민수를 사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끈끈한 사제 관계는 스승 손민수가 지난 2023년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옮길 때 제자 임윤찬도 따라가면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둘도 없는 사제 간인 두 사람의 듀오 무대가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올여름 클래식계 최고 화제의 공연답게 일찌감치 매진돼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막이 오르기 전에 무대 위 피아노 배치부터 눈길을 끌었다. 피아노 두 대를 마주 보게 하는 대신 각각 바깥 방향으로 향하게 한 뒤 가깝게 붙여 놓은 것이다. 이런 배치는 두 연주자가 공연 도중 시선 교환 등 함께 호흡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카드가 주최한 공연 1부는 브람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단조, Op.34b’로 시작됐다. 브람스는 원래 현악 오중주를 작곡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다시 썼다. 주위의 권유를 받아들여 피아노 오중주(Op.34)로 최종 완성했지만,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도 버리기 아깝다고 생각해 Op.34b로 출간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피아노 오중주보다 음색의 다채로움은 부족하지만 긴밀한 구성과 풍부한 악상의 매력은 뒤지지 않는다. 특히 하나의 피아노가 주도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면 다른 피아노는 그에 맞는 하모니를 연주하는 등 서로 역할을 계속 바꾸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날 손민수와 임윤찬은 작품에 걸맞은 조화와 균형으로 정밀하면서도 깊은 연주를 선보였다. 임윤찬이 열정적 타건으로 음악적 긴장을 고조시키면, 손민수는 이를 차분히 받아주며 깊이를 더했다. 상대방에 대해 “존경하는 제자” “종교 같은 스승”이라고 했던 두 사람은 이 작품에서 깊은 신뢰가 있는 사제 간인 동시에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동료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2부의 첫 번째 작품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무곡, Op.45’은 라흐마니노프가 오케스트라 버전 ‘교향적 무곡’보다 두 달 먼저 작곡한 곡이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낭만적인 선율과 풍부한 화성, 강렬한 리듬감이 두드러진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라흐마니노프는 관현악의 웅장함과 각 악기의 특성을 피아노 두 대의 화음과 선율로 담아냈다.
1부에서 제1 피아노를 맡았던 손민수가 2부에선 제2 피아노를 맡으면서 두 연주자의 호흡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두 연주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가운데 스무 개 손가락이 빚어낸 오케스트레이션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스승과 제자의 호흡에는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두 연주자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이 곡을 단단하게 연주하면서도 다채로운 감정선과 섬세한 뉘앙스를 놓치지 않았다.
대미는 임윤찬의 한국예술종합학교 후배인 신예 작곡가 이하느리가 편곡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장미의 기사 모음곡’이 장식했다. 이 곡은 아르투로 로진스키가 1944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1막과 2막의 주요 장면을 토대로 만든 관현악 모음곡을 다시 편곡한 것이다.
슈트라우스 특유의 웅장하고 색채감 있는 관현악을 피아노 두 대에 담아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하느리는 보기 좋게 멋진 결과물을 내놓았다. 손민수와 임윤찬이라는 뛰어난 두 피아니스트를 위해 만든 만큼 복잡다단한 화성, 드라마틱한 구성, 폭넓은 건반 사용 등을 극대화했다고 해도 이하느리의 재능을 다시 한번 주목하게 만든다. 손민수와 임윤찬은 이 작품에서도 친밀한 음악적 교감을 보여줬는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연주는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편안하게 들렸다.
한편 두 사람의 듀오 무대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 차례 더 열린 뒤 이달 말부터 스위스와 프랑스로 이어진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