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를 3일 앞둔 한 병사가 있었다. 그는 제대 후 남극으로 가 조용히 삶을 끝낼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에서 열린 공연에 예배인 줄도 모르고 참석했다. 무대 위에는 세 명의 여성이 땀 흘리며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있었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와 현란한 조명 속에서 병사는 자신도 모를 감정을 느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복해 보일까. 저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대체 누구일까’ 그날의 무대는 한 사람의 발걸음을 남극이 아닌 교회로 향하게 했다.
무대 위 주인공은 올해로 결성 23년 차를 맞은 CCM 밴드 프라이드밴드다. 13일 김포 다음세대교회에서 만난 93년생 동갑내기 멤버 소현(리더·베이스), 여은(기타), 유빈(드럼)에게 왜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군부대나 학교 같은 낯선 곳으로 향하는지 묻자, 한 청년 군인이 전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들에게 교회 밖 세상은, 바로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나아가야 할 소중한 통로였다.
세상과 교회, 그 경계
이들은 국내 CCM계 최초의 여고생 밴드로 KBS ‘탑밴드’에 출연해 화제가 됐고, 지난 2020년에는 ‘캔디걸스’라는 이름으로 tvN 음악 예능 ‘좋은가요’에 출연해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5년전, 이들이 육군 논산훈련소에서 부른 찬양 ‘실로암’ 라이브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31만회에 달한다.
이들의 방송 출연과 CCM의 기준을 뛰어넘는 무대는 비기독교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기타를 맡은 멤버 여은은 “‘CCM 가수’라는 소개만으로는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렵다”며 “하지만 ‘TV에 나왔던 밴드’라고 하면 한 번이라도 더 호기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방송 출연으로 얻는 유명세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복음을 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통로이자 도구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오해들을 마주하게 했다. 교계에서는 “교회 밖에서 세상의 기준을 맞추는 그게 무슨 찬양이냐”는 비판적인 시선이, 세상에서는 여성성이 부각되는 방식의 공연을 점점 더 원하게 되는 오해가 따랐다. 멤버들은 “그 중심을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지만, 이들은 결국 흔들리지 않았다. 멤버 유빈은 “우리가 가요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이유는 결국 찬양을 전하기 위함이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23년 전, 맞벌이 부모님 때문에 방과 후엔 늘 혼자였던 소녀들에게 교회는 제2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류인영 목사는 이들의 든든한 보호자이자 스승이 됐다. 류 목사는 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밴드를 만들게 했고, 음악 때문에 성적이 떨어진다는 부모들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방과 후엔 직접 과외 선생을 자처해 공부까지 도왔다. 교회에서 함께 음악을 하고, 함께 숙제하던 그 시간들이 쌓여, 세 사람의 우정은 어떤 비판과 오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가 됐다.
“헌신을 넘어, 나를 살리는 치유”
사역을 지속하게 하는 근본적인 동력은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경험에 있다. 리더 소현은 어머니를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떠나보냈던 아픔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왜 데려가셨는지 이해할 수 없어 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 컸다”고 했다. 하지만 기도하는 중에 ‘천국’이라는 소망이 마음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엄마가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행복할 거라는 믿음, 또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이 생기자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다”며 “이 경험을 무대 위에서 나눌 때,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이 위로를 얻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입으로 ‘주님이 나를 위로해주셨다’고 고백하는 순간들이 매 순간 나를 다시 살리는 힘이 된다”며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현의 깊은 고백처럼, 다른 멤버들 역시 자신이 경험한 가장 귀한 것을 나눠야 한다는 절박함이 사역의 이유가 됐다. 기타리스트 여은은 이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에 비유했다. 그는 “만약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천국을 모른 채 세상을 떠난다면 너무 미안할 것 같다”며 “그 방법을 알고 있는데 전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 사람이라도 더 빨리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드러머 유빈도 “정말 좋은 정보가 있으면 친한 친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지 않나”라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그런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23년의 길, 하나의 노래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이들의 음악과 메시지에도 시간의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20대의 뜨거운 에너지로 무대를 채웠다면, 이제는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더 깊이 있는 메시지를 음악에 담고 싶다고 했다. 드러머 유빈은 “우리도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똑같이 넘어지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런 연약함을 솔직하게 나눌 때, 오히려 더 많은 청년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에게도 스스로 힘이 되어준 찬양이 있는지 묻자 주저 없이 한웅재 목사의 ‘소원’이 나왔다.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주님 뜻대로 나 살기 원하네’ 이 노래의 가사는 밴드가 걸어온 길이면서 동시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와 같았다. 리더 소현은 이 가사를 언급하며, “화려한 무대나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고백과 삶이 일치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그것이 우리가 23년간 노래하는 이유의 전부”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포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