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X→중국→농심… ‘알비’ 구상민의 선택과 각오

입력 2025-07-13 13:20 수정 2025-07-13 14:26
'알비' 구상민은 지난 9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농심 레드포스 사옥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이야기를 했다. 그는 농심의 마스코트 '포리'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금 제 목표는 농심 레드포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입니다. 장기적으론 서른 살이 넘어서도 프로 선수로서 커리어를 오래 유지하는 게 목표예요.”

발로란트 1세대 프로게이머 ‘알비’ 구상민이 고향인 퍼시픽 리그로 돌아온다. 국내 최강팀으로 불리는 DRX의 전신 비전 스트라이커즈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던 그는 지난해 신설된 중국 리그에서 1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친 뒤 농심을 다음 선택지로 골랐다. 타 리그에서의 혹독한 시간을 딛고 돌아온 그는 “서른 살이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구상민은 지난 9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농심 레드포스 사옥에서 진행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퍼시픽 리그 복귀 소감과 중국 리그에서의 경험, 그동안의 프로 생활 소회를 허심탄회하게 풀었다.

구상민은 “비전 스트라이커즈 시절은 한국 발로란트의 첫 프로팀이었기 때문에 우승을 목표로 밤낮없이 연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아쉬운 성적으로 여러 좌절도 많았지만 그 힘든 시간들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특히 DRX 때를 떠올리며 “2022년에 국제 대회에서 ‘5~6위권의 저주’처럼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다. ‘왜 이 등수를 못 벗어날까’란 고민이 많았다”며 “연습이 잘 될 때도 결과는 같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원들과 수없이 연습했다. 덕분에 마지막엔 발로란트 챔피언스 이스탄불에서 3위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DRX 이후엔 지난해 처음 신설된 중국 무대에 도전한 구상민이다. 그는 “2023년 챔피언스가 끝나고 팀 내부에선 멤버 교체 이야기가 나왔다. 오프시즌 대회에 참가하면서 이적 권한을 받았지만 DRX가 한국 최강이라고 판단해 남겠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프시즌 대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다시 멤버 교체 이야기가 나왔다. 이 때문에 결국 로스터에서 제외됐고 퍼시픽 팀에서는 갈 곳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마침 중국 리그가 처음 개최됐다. 여러 팀에서 오퍼가 왔지만 그 중 조건이 잘 맞았던 타이탄 e스포츠 클럽을 선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발로란트계 베테랑인 구상민이 타이탄 e스포츠 클럽에 합류하자 중국 현지에선 그에게 큰 관심과 기대를 보였다. 그러나 중하위권을 맴돌며 기대에 못 미쳤고 이후에도 팀은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구상민은 팀 내 오더인 IGL(인 게임 리더)를 맡았다.

“타이탄에서 선수로서 생활은 정말 좋았어요. 외국인 선수다 보니 많은 배려를 받았죠. 성적이 좋지 않자 직접 IGL을 맡고 싶다고 제안했고 테스트 결과 좋은 평가를 받아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언어 장벽이 있어 쉽지 않았지만 통역사에게 스크림 중 게임 용어를 모두 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중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아울러 그는 “긴 대화는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서 했다. 돌아보면 용병인 내가 IGL을 맡아 팀원들에게 세부적인 부분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알비' 구상민

중국 리그에서 얻은 것도 많았다. 구상민은 “중국은 플레이 스타일이 매우 공격적이다. 피지컬이 부족하면 버티기 어렵다고 느껴 개인적으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기본 피지컬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차기 팀으로 농심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구상민은 “농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타이탄에서 함께했던 팀원과 스태프를 생각하니 고민도 됐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팀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농심은 구상민과 ‘페르시아’ 양지온을 제외하면 전원이 10대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평균 연령은 20.5세로 매우 젊다.

구상민은 농심의 공격적인 색깔을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았다.

“농심의 경기는 전부 챙겨봤어요. 젊은 선수들이라 그런지 공격성이 강하더라고요. 피지컬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팀입니다. 공격성이 지나치다 보니 수비적 상황에서 대처가 어려워 보였어요. 제가 그런 부분을 알려주고 조율하면 좋은 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마코’ 김명관, ‘버즈’ 유병철, ‘스택스’ 김구택이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아쉬움도 느꼈다.

“정이 많이 들었던 선수들이라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축하하는 마음이 컸어요. 우승 후엔 직접 메시지도 보냈죠. 물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아직 최고 권위 대회인 챔피언스를 우승한 한국 선수가 없으니 내가 이루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잡았어요.”

최근 발로란트 국제대회인 마스터스에서 퍼시픽 리그가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구상민은 “프랜차이즈가 개편됐을 때만 해도 페이퍼 렉스(PRX·싱가포르)나 DRX가 꾸준한 성적으로 리그의 이미지를 끌어올렸다면 이제는 젠지와 T1 같은 팀들이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퍼시픽 리그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고 본다”며 “과거에는 퍼시픽이 꼴등 리그라는 말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 세계 리그 중에서도 1~2위를 다툴 수 있을 만큼 올라왔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구상민은 리그 내 경계되는 팀으로 젠지, PRX, DRX, T1을 꼽았다. 구상민은 “PRX는 정말 공격적인 팀이다. 수비하지 않아도 이미 게임이 박살나 있는 느낌”이라면서 “젠지는 밸런스가 좋은 팀이다. DRX와 T1도 경계되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농심은 오는 15일 개막하는 발로란트 챔피언스 투어(VCT) 퍼시픽 스테이지2에서 첫 상대로 탈론 e스포츠를 만난다.

구상민은 “농심은 2군 리그인 어센션에서 올라온 팀이다. 이번 대회에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면 다시 2군으로 떨어진다”며 “반드시 플레이오프에 오르겠다. 실망시키지 않고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