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프로야구에서 떠오르는 선수 중 한 명은 단연 한화 이글스 김서현이다. 시즌 초반 갑작스럽게 마무리 투수 역할을 맡았음에도 뒷문을 탄탄히 책임지며 팀의 선두 질주에 기여하고 있다.
김서현은 2025 KBO리그 올스타 팬 투표에서 178만6837표를 얻어 역대 최다 득표자로 이름을 올렸다. 3년 차 신인이 거둔 이례적인 성과다.
이 같은 인기를 뒷받침하는 건 압도적인 성적이다. 김서현은 8일까지 21세이브를 수확해 부문 4위에 올라 있다.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마무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최근 경기장에서 만난 김서현은 자신의 전반기 점수를 “30∼40점 수준”으로 매겼다. 그는 “눈에 밟히는 아쉬운 경기가 너무 많다. 볼넷 비율을 줄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김서현은 이번 시즌 ‘소방수’로서 임무를 다하고 있다. 원래 보직은 중간계투였으나 기존 마무리 주현상의 부진으로 임시 클로저로 낙점됐다. 프로 통산 세이브가 데뷔 시즌에 올린 1개뿐이었고, 아직 신인급이라는 점에서 다소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는 “솔직히 부담이 컸다. ‘내가 이 자리에 서도 되나’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면서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너에게 맞는 옷은 마무리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순간 그 믿음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프로 입단 이후 김서현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고교 시절 시속 160㎞ 강속구로 기대를 모았으나 첫해 20경기 출전에 그치는 동안 평균자책점은 7.25에 달했다. 지난 시즌 두 자릿수 홀드와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가능성을 보였으나 들쭉날쭉한 경기력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올 시즌 반등 배경엔 주변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양상문 코치의 공도 컸다. 김서현은 “양상문 코치님께서 경기 전후는 물론, 마운드 위에서도 즉각적으로 조언을 주셔서 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력자는 친형 김지현이다. 한화에서 불펜 포수로 활약 중인 김지현은 경기 전 김서현과 15개 정도 불펜 투구를 소화하며 구위 점검을 돕는다. 김서현은 “형이 ‘오늘 이 공이 좋다’ ‘이건 빼자’며 컨디션을 점검해 준다. 등판 전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안방마님 최재훈과 이재원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김서현은 “제구가 잡히지 않아 공이 사방으로 튀는 날에도 다 받아주신다. 볼 배합을 이끌어 주시는 늘 든든한 존재”라며 웃어 보였다.
이 모든 것은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했다. 평균 시속 151㎞에 달하는 직구와 투심으로 타자들을 윽박지른다.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홈플레이트 앞에서 푹 꺼지는 포크볼도 위력을 더한다.
여기에 마무리 투수에게 필요한 강한 승부욕까지 갖췄다. 그는 지난 3일 NC전에서 ⅔이닝 동안 볼넷 3개를 내주고 교체된 뒤 더그아웃에서 모자를 구기며 분을 삭였다. 이 모습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서현은 “마무리투수로서 책임졌어야 할 이닝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었다”며 “분한 감정은 오늘까지만 담아두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세이브 경쟁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부문 1위 박영현(KT 위즈·25개)과의 격차는 4개에 불과하다. 타이틀 욕심이 생길 법도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김서현은 “원래 개인 목표에 크게 관심이 없다. 지금 세이브 숫자도 기적처럼 느껴진다”며 “가을야구 진출이 최우선 목표고, 가을에 공을 던지게 된다면 무조건 우승만 바라볼 것”이라는 각오를 전했다.
최원준 기자 1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