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목적성을 가진 교회의 프로그램 공간들 속에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 누구나 대화할 수 있는 마당, 특별한 이유 없이도 들를 수 있는 비목적형 공간을 배치하여 자연스러운 동선의 흐름을 유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커뮤니티 공간이 이러한 느슨하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한 흐름을 품기 위해서는, 교회가 기능 중심의 시설을 넘어 커뮤니티의 일상 속 정서와 사회 문화적 행위를 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품은 장소로 작동해야 합니다.
종교적 의미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바탕으로 지역을 향해 더욱 열려 있는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설교와 예배, 찬양이 이루어지는 내부 예배당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오가는 사람들이 머물며 교류할 수 있는 외부공간, 동선들이 만나는 결절점에 열린 공간, 주중에도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는 다목적 공간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공간들의 다채로운 혼합 배치는 결국 교회를 지역 커뮤니티와 이어주는 자연스럽고 친근한 매체로 만듭니다.
커뮤니티 공간 구성 요소 및 설계 시 고려 사항
공간이 사람의 삶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공간 구조적 전제가 필요합니다. 먼저, 물리적인 진입 구조가 폐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사용자는 쉽게 진입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외부로부터 단절된 공간이 됩니다. 커뮤니티와 이어지는 퍼블릭 공간을 가능한 개방적인 구조로 구성하면 공간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자연스럽게 접근과 쓰임새를 유도하는 요소가 됩니다.
또한, 공간 내부의 구성 역시 유연해야 합니다. 하나의 공간이 고정된 기능만을 수행하는 대신, 시간과 용도에 따라 전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중, 주간에는 어린이 돌봄 공간으로, 저녁에는 지역주민 모임이나 클래스를 위한 공유 공간으로 바뀔 수 있도록 구조를 계획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이는 단순한 평면 변경을 넘어서서, 조도, 음향, 가구 배치, 가변 벽체 등 복합적인 설계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머무름과 소통’을 유도하는 요소들입니다. 빠르게 통과하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머물고 싶은 공간과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친근한 자연광의 도입, 자연통풍, 자연을 품은 내 외부공간의 연결 및 중첩, 친환경, 친자연적 재료의 따뜻한 감성 등에서 비롯됩니다. 정서적 안정을 주는 구성은 사람들이 그 공간에 익숙함을 느끼게 하며, 결국은 관계를 형성하는 기초가 됩니다.
이처럼 커뮤니티 공간의 구성은 기능 중심의 계획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 머무름, 동선의 흐름, 그리고 생활의 리듬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교회가 이 조건을 충족할 때, 지역사회 안에서 실제로 연결된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중국 시안 외곽 신도시 개발지에 들어선 Land Community Center는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끊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회복하고자 기획된 커뮤니티 거점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편의시설을 넘어, 일상의 리듬 속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어지도록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특징은 중심 광장을 둘러싼 가변형 프로그램 배치입니다. 수영장·체육시설·카페·커뮤니티 회의실이 기능별로 자리하지만, 벽으로 완전히 구획하지 않고 시각적·동선상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습니다. 덕분에 사용자는 프로그램 목적보다는 공간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는 본문에서 강조한 ‘기능 완결보다 여백과 유연성을 중시하는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사례입니다.
동선 계획 역시 개방적입니다. 정면 출입구 외에도 여러 측면에 열려 있는 진입부가 마련돼 있어, 지역 생활 동선과의 접점을 극대화합니다. 내부 복도는 외부 광장과 시선이 교차하도록 설계돼, 방문자가 시설을 관통하듯 지나면서도 곳곳에서 머무를 기회를 얻게 됩니다.
특히 중심 광장은 단순 통로가 아니라 체류를 위한 장치로 기능합니다. 계단식 데크와 식재 휴게 공간이 외부 환경과 내부 프로그램을 자연스럽게 잇고, 주민이 특별한 목적 없이도 들르거나 머무를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본문에서 다룬 ‘머무름을 유도하는 요소’의 전형적인 적용 사례입니다.
결국 Land Community Center는 ‘시설’이 아니라 ‘흐름을 위한 구조’로 완성됐습니다. 고정된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이 스스로 공간을 구성하고 변화시킬 여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교회 공간도 이와 같은 접근을 취한다면, 물리적 개방을 넘어 관계적 개방까지 설계하며 지역사회와 더욱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덴마크 아루스(Aarhus)의 항구 재개발 지역에 2015년 완공된 Dokk1은 Schmidt Hammer Lassen Architects가 설계한 대형 복합 커뮤니티 센터입니다. 도서관, 미디어센터, 공공 서비스 기능을 통합한 이 공간은 단순한 정보 접근의 장소를 넘어,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는 새로운 공공의 장으로 기능합니다.
이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 구성과 동선 계획을 통해 머무름과 흐름을 동시에 유도한다는 점입니다. 전면을 유리로 구성한 낮은 층의 건물은 도시와 수변, 광장과 내부 공간을 시각적으로 이어주며, 그 위에 떠 있는 듯한 금속 디스크 형태의 상부 구조는 강한 상징성과 인지성을 동시에 확보합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출입 방향에 제한을 두지 않는 열린 설계가 돋보입니다.
중심부에 배치된 계단식 라운지는 단순히 공간을 연결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물고 교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소셜 플랫폼으로 작동합니다. 방문자는 특정 기능을 따라 움직이기보다, 공간의 분위기와 흐름에 따라 머무르며 동선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기능보다 여백과 흐름 중심의 설계’가 실제로 구현된 사례입니다.
실내 공간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서관 열람 공간, 어린이 활동 존, 전시 및 이벤트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으나 시각적으로는 연속성을 유지해, 사용자에게 개방적이고 유연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여러 기능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구성은 머무름의 지속성과 커뮤니티 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주변 도시와의 연결도 정교하게 설계되었습니다. Dokk1은 항구 산책로, 도시 대중교통, 보행자 흐름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시민 누구나 일상 동선 속에서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건물의 모든 방향에 진입이 가능한 다방향 출입 구조는 교회 공간 설계에도 적용 가능한 중요한 전략입니다.
재료와 채광 계획도 주목할 만합니다. 외부는 금속 패널로 도시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면서도, 내부는 유리, 목재, 콘크리트를 조합해 따뜻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천창과 벽면의 수직 창을 통해 풍부한 자연광을 유입시켜, 장시간 머물러도 피로감이 적고 집중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Dokk1은 건축, 도시계획, 커뮤니티 운영이 통합된 공간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커뮤니티 허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설계적·운영상의 인사이트가 도움이 됩니다. 예배 공간과 부속 공간을 유연하게 연결하고, 다양한 출입 방향을 마련하며, 사람들의 자발적인 머무름을 유도하고, 따뜻한 재료와 채광 전략을 통해 정서적 환대를 실현하는 방향은 Dokk1이 보여주는 핵심 설계 언어입니다.
이스라엘 중심부 도시인 레호보트(Rehovot)에 위치한 Rehovot Community Center는, 다양한 세대가 일상적으로 모이고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이 커뮤니티 센터는 도심의 주요 보행축에 면해 있으면서도, 외부 소음과 단절되지 않고 도시의 흐름을 수용하는 개방형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센터 외부에는 계단식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진입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체류와 대화를 유도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낮은 단차를 가진 계단은 아이들이 뛰놀고, 어른들은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자리로도 활용됩니다. 내부로 진입하지 않더라도 이미 외부에서부터 ‘이용자 중심의 설계’가 구현된 셈이며, 이는 본문에서 언급한 ‘심리적 접근 장벽을 낮추는 공간 구성’의 핵심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건물 내부는 중앙 복도를 기준으로 기능 공간들이 좌우로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회의실, 교육실, 놀이방, 공연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들이 각각 격리되어 있지 않고 시선이 열려 있습니다.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곳곳의 반투명 파티션은 공간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사용자의 시선과 이동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구성됩니다. 고정된 기능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과 사용자에 따라 공간의 활용이 달라지는 구조는 앞서 서술된 ‘유연한 공간 구성’의 좋은 사례입니다.
특히 Rehovot Community Center는 연령 구분 없는 공간 사용을 지향합니다.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바닥 높이의 다양화, 안전한 재료 마감, 가시성 높은 조명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이 구조는, 종교 공간을 포함한 커뮤니티 시설이 공간 설계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이 센터는 단지 주민 편의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용자의 움직임, 시선, 체류의 흐름을 중심에 두고 설계된 결과물입니다. 교회 공간도 이러한 흐름을 수용할 수 있다면, 특정 목적을 위한 공간을 넘어 삶과 신앙, 일상과 돌봄이 맞닿는 장소로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Rehovot의 사례는 기능과 구조의 통합이 어떻게 공동체의 일상을 담아내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