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욱하는 청소년

입력 2025-07-09 09:34

고등학교 1학년 M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참지 못하고 욱한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진다. 이런 공격적인 행동 때문에 학교에서도 친구들은 M을 피하고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에게도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다. 집에서도 이런 행동을 하니 집안 분위기가 형편없이 망가졌다. M의 이런 행동은 중학교 2학년쯤부터 시작되었다. 차츰 강도나 수위가 높아져 가고 있다.

M은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에게 성적 때문에 야단을 맞고 억울함과 분노, 자책감이 함께 올라와서 견디기 힘들었을 때, 처음 주먹으로 벽을 쳤다고 한다. 손이 아프고 피가 나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했던 복잡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다음부터는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부정적인 감정이 있을 때마다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 차츰 타인에게도 공격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순간 상대가 움찔하는 모습을 보면 지배감, 통제감이 느껴졌다.

M에게 그렇게 힘든 감정을 없애려고 써왔던 그런 행동들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물어보았다. “벽을 치거나 하는 행동을 하고 나면 사실 순식간에 화나 억울함 힘든 감정이 일순간 해소되어요”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조금 지나면 다시 감정이 올라오기는 해요. 그리고 후회가 되죠. ‘내가 또 왜 그랬지’ 라고요.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욱하게 돼요” 하지만 일순간에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다 보니 감정이 힘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M의 경우처럼 감정이 활성화되어 강렬하고 압도적인 감정으로 올라올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를 관리하고 싶어진다. 극도로 고통스럽고 힘든 감정일수록 이를 최대한 빨리 차단, 중지하려 든다. ‘직감 반응’을 하는 거다. 이러한 감정 관리 전략이 반복되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지 않고 쉽게 의지하게 되고 반복하여 습관이 된다.

치료의 전락은 이런 ‘직감 반응’을 대신하여 ‘알아차리기’ 전략을 배우도록 돕는 거다. 비유하자면 ‘직감 반응’은 시끄러운 음악과 같아서 지금 당장 충동적으로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알아차리기’는 부드러운 배경 음악과 같다. 부드럽고 섬세하며, 무엇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장기적으로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예를 들어 레몬을 깨물었을 때, 시고 쓴맛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고 뱉어 버릴 수도 있지만(직감 반응), 건강에 도움 된다는 것을 떠올리면 시고 쓴맛을 느끼지만, 레몬을 씹어서 삼킬 수도 있다(알아차리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너만도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연구 결과 두 가지 유형의 시스템이 있다고 하였다. 시스템 1은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며,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시스템 2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선택을 하게 한다. 즉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이라고 하였다. 위급하고 응급한 상황이라면 시스템 1이 작동하는 게 유리하지만, 대부분은 시스템 2가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실수가 적고 장기적인 이득이 크다는 것이다.

레몬이 시고 써서 뱉어버리고 싶은 촉박감을 알아차리고, 뱉는 게 유리할지, 시리고 쓴맛을 머금고 씹어서 삼키는 것이 유리할지 의도적으로 선택해 볼 일이다. 우리의 감정도 레몬과 같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