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첫 내한 이후 갈라 무대엔 자주 섰지만, 전막발레는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가 돼요.”
세계적인 발레 스타 다닐 심킨(37)이 8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 출연하는 소감을 밝혔다. 심킨은 19∼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트 왕자 역으로 19일과 23일 발레리나 홍향기와 두 차례 호흡을 맞춘다. 심킨은 “현재 프리랜서 발레리노로 전 세계 무대에 서고 있지만, 발레단 소속이 아니어서 갈라 공연이 대부분이다보니 아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러시아계 독일인인 심킨은 발레 무용수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발레를 배웠다. 예술학교에 다니는 대신 9세부터 어머니의 지도를 받은 그는 주니어 시절 여러 콩쿠르를 휩쓸며 주목받았다. 그는 “부모님은 어린 시절 집을 떠나 발레학교에서 생활해야 했던 경험을 아들인 나에게 시키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발레 훈련을 직접 시키시면서 내가 다른 길도 선택할 수 있도록 일반 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했다”면서 “16살이 됐을 때 내가 발레리노의 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2004년 바르나 국제 발레 콩쿠르, 2005년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 2006년 잭슨 국제 발레 콩쿠르 등 주요 콩쿠르에서 잇따라 우승한 그는 2006년부터 빈 국립오페라발레단 드미솔리스트 입단과 동시에 해외 각국을 넘나드는 게스트 무용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 솔리스트로 입단해 2012년부터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다. 2018~2019년엔 독일 베를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다. 그의 장기는 고난도 테크닉으로, 발레 ‘돈키호테’에서 그가 선보이는 3연속 540도 회전 기술은 트레이드마크다.
“무용수에게 테크닉은 중요하지만 극 중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토대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트 왕자는 테크닉을 뽐내서는 안 됩니다. 품격있는 춤을 춰야 하거든요. 회전을 몇 바퀴 도느냐보다 연기와 맞물려 회전을 어떻게 마무리할지가 중요합니다.”
러시아에서 1895년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 안무로 초연된 ‘백조의 호수’는 1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재안무 버전이 나왔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마린스키 발레단 예술감독이었던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프티파-이바노프 버전을 토대로 재안무한 것이다. 지그프리트 왕자가 악마 로트바르트를 물리치지 못하고, 오데트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이다.
심킨은 “유니버설발레단은 러시아 스타일이기 때문에 러시아 발레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집에 온 것처럼 친숙하다”면서 “‘백조의 호수’가 다양한 버전이 있는 만큼 그 버전에 맞춰 자신을 새롭게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유니버설 발레단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트는 ‘노’(No)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못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캐릭터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함께 호흡을 맞출 발레리나 홍향기에 대해 “‘백조의 호수’ 속 오데트/오딜처럼 연약함과 강함의 양면성을 가진 좋은 무용수라고 생각한다. 파트너가 되어 첫 연습을 하면 느낌이 오는데, 그때 바로 호흡이 잘 맞을 것 같았다”고 웃었다.
심킨은 이날 친구인 발레리노 김기민(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을 비롯해 여러 차례 한국 발레계와의 친밀함을 드러냈다. 또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시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적인 소프트파워 강국이다. 해외를 다니다 보면 한국과 관련된 콘텐츠를 많이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면서 “최근 한국 무용수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있는데,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그는 2021년 ‘스튜디오 심킨’을 설립해 발레를 다른 장르의 예술 및 테크놀로지와 융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2015년부터 이미 가상현실, 몰입형 공연, 댄스필름 등의 작업을 해왔던 그가 본격적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프로듀서’로 나선 셈이다. 지난 2017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발레와 설치미술 그리고 건축을 결합한 공연을 선보인 것이나 2020년 베를린 국립발레단과 공동 제작한 댄스필름 ‘디오라마’ 등은 대표적이다.
“그동안 발레는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발전해 왔는데요. 지금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무대를 넘어 다양한 차원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보다 흥미로운 방법으로 발레를 보여주고 싶어요. 발레에서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는 데 제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