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 재개관 기념행사 ‘유감’

입력 2025-07-07 05:00 수정 2025-07-07 12:03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재개관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지난해 대학로에 문을 열었던 아르코꿈밭극장은 꿈밭펀딩 모금으로 조성된 2억5800만원의 후원금을 통해 객석과 무대시설 등을 개선해 재개관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난 4일 대학로 소극장 학전 자리에 들어선 어린이·청소년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의 재개관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7월 개관식 이후 리노베이션을 거쳐 1년 만에 다시 열린 재개관식 기념행사는 두 가지 면에서 유감스러웠다. 우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직영하게 된 아르코꿈밭극장 운영의 장기적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았다.

아르코꿈밭극장은 지난해 3월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의 건강 문제와 경영난으로 소극장 학전이 문을 닫자 예술위가 다시 임차해 어린이·청소년 공연장으로 만든 것이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아시테지코리아)가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운영을 맡았지만, 공연장 시설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 때문에 3개월간 리노베이션이 이뤄졌다. 그리고서 아시테지코리아는 7월 개관 이후 아시테지 여름축제를 주최하는 한편 다른 아동극단 등에 극장을 대관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예술위는 아시테지코리아의 위탁 기간이 끝난 후 다시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다. 지난해 대학로 문화를 상징하는 소극장 학전을 잇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서둘러 아르코꿈밭극장을 개관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손대지 못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펀딩으로 모금된 후원금 2억5800만원으로 객석, 무대시설, 분장실 등을 고쳤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재개관 기념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재개관식에서 예술위는 극장 입구 외벽과 분장실, 공연장 입구에 후원자들의 이름을 새긴 ‘도너스월’(Donor's Wall) 현판을 부착했다. 그리고 주식회사 파라다이스, 쇼노트 등 후원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들에게 후원증서도 수여했다. 정병국 예술위 위원장은 “아르코꿈밭극장을 어린이들이 꿈을 마음껏 펼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장으로 만들려 한다”며 “열심히 후원하고 기여하는 기업은 표시가 나도록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이 예술위에 온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부분은 후원 활성화다. 이날 기념식에서도 아르코꿈밭극장 후원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문화예술후원 인증제도 도입 등을 강조하고 나섰다. 물론 후원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첫 개관 이후 1년이 지난 데다 예술위가 앞으로 직영하기로 한 만큼 공연장의 운영 조직이나 방향성 등에 대한 설명도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이날 예술위 직원에게 들은 것은 앞으로 예술위로부터 지원받는 어린이 공연에 아르코꿈밭극장을 무료로 대관해 준다는 것 외엔 없었다.

공연장은 개관보다 개관 이후가 더 어렵다고 한다. 운영 비용 등의 문제와 함께 공연장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르코꿈밭극장은 국내 어린이·청소년 공연계의 중심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는 만큼 창작자 육성과 관객 개발, 프로그래밍 등에 대한 전반적인 구상을 밝혔어야 했다. 예술위는 공연장을 단순한 지원 도구로 사용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된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꿈밭극장에서 열린 재개관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공연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또 하나 유감스러웠던 점은 재개관 기념 공연으로 선보인 제작사 엠제이플래닛의 ‘사슴 코딱코의 재판’(4~5일 3회) 내용이다. 관객 참여형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이 자칫 어린이 관객에게 범죄를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다.

‘사슴 코딱코의 재판’은 2021년 강북문화재단 지역예술지원사업을 통해 쇼케이스를 선보인 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중장기 창작지원사업에서 초연됐다. 이후 엠제이플래닛의 인기 레퍼토리가 되어 전국 공연장에서 종종 무대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수어 통역사와 자막이 있는 배리어 프리 공연으로 선보여졌다.

이 작품은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이다. 전래동화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담긴 잔혹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선녀와 나무꾼’도 선녀의 옷을 숨겨서 아내로 삼고 아이까지 낳게 하는 나무꾼은 요즘이라면 납치, 강간, 감금 등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자다. 그렇다면 나무꾼에게 선녀의 목욕 장소를 알려줌으로써 성범죄의 계기를 만든 사슴은 어떤 재판을 받아야 할까? 법정에서 검사는 사슴의 유죄를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변호사는 사슴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나무꾼에게 선의로 정보를 알려줬을 뿐이며, 나무꾼이 실제로 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아르코꿈밭극장 재개관 기념공연으로 선보인 ‘사슴 코딱코의 재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재판에서 배심원이 된 관객들은 사건에 대해 토론을 벌인 뒤 유죄, 무죄, 기권 중에 선택하게 된다. 관객의 선택이 공연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이날 재판에선 무죄를 선택한 관객이 유죄의 3배나 됐다. 그리고 기권은 유죄의 절반 정도였다. 이런 결과는 전체 공연 시간의 대부분을 사슴의 서사로 풀어내다보니 관객들이 사슴에게 온정적 이입을 한 것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극 중에서 사슴의 본명은 ‘코코’였지만 어린 시절 사냥꾼에게 아버지를 잃는 등 ‘딱’한 사연을 가졌기 때문에 ‘코딱코’로 불리게 됐다. 이외에도 사슴은 공연 내내 어리고 불쌍한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 피해자인 선녀의 이야기는 불과 5분 정도에 불과했다.

이날 토론에서 어린이 관객들은 하나같이 사슴의 유죄 여부에 대해 “모르겠다”고 했고, 성인 관객들은 사슴의 무죄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범죄를 실행한 나무꾼이 나쁘지, 단순히 정보를 준 사슴은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준에서 사슴은 형법상 교사죄를 물을 수 있다. 사슴이 범죄 의사가 없던 나무꾼에게 범죄 실행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관객은 사슴이 사람으로 치면 촉법 소년에 해당하기 때문에 죄를 묻지 말고 교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공연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고 해도 무죄를 선언하며 끝난 이날 결말은 당황스러웠다. 작품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사슴을 온정적으로 그리는 것을 줄이고 사슴의 행위가 잘못이라는 것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 필요해 보인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