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때도 배우들끼리 농담 삼아 얘기했었어요. 작품 공개되면 저 욕먹을 일만 남았다고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먹어 문제이긴 한데…(웃음).”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 최고의 악역이 누구냐고 물으면 상당수는 이 인물을 꼽을 것이다. 돈이 걸린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의 혈육인 아기마저 수단으로 삼는 명기 말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명기 역의 배우 임시완(37)은 “요즘 욕을 많이 먹고 있다”면서도 “배우로서 캐릭터 때문에 욕먹는 건 칭찬이자 축복이라 생각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임시완은 “나는 타노스(최승현)와 남규(노재원)가 절대악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처음엔 명기도 악역으로 봤는데 황동혁 감독님이 ‘명기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고 말씀하셨다. 그 혼란스러움을 끝까지 유지한 채 찍었다. 결과물을 보니 ‘가장 악한 빌런은 아닐지라도 제일 밉상은 맞겠다’는 확신이 들더라. 감독님 덕에 명기가 일차원적이지 않은 입체적 인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극 중 코인(암호화폐) 투자 유튜버인 명기는 게임에 참여했다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전 여자친구 준희(조유리)를 만나 내적 갈등을 겪는다. 준희와 아기를 지키고자 하지만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욕심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거듭하는 것이다. 임시완은 “명기는 악하다기보다 겁 많고 소심한 찌질이”라며 “준희에 대한 마음만큼은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촬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상금에 눈멀어 폭주하던 명기가 준희와 아기를 지켜준 현주(박성훈)마저 죽이는 장면은 비극적이다. “사실 저는 그때부터 이미 명기에 대한 마음이 떠났거든요? 그런데 시청자들은 마지막 게임에서 배신감을 느끼셨다고 해서…. 참 인내심이 많고 관대하시구나 생각했습니다(웃음).”
임시완이 언급한 ‘마지막 게임’에선 격동의 광기가 그려진다. 높은 기둥 위에서 아기의 목숨을 위협하며 상대를 협박하는 모습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임시완은 “인간적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며 “감정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잔꾀를 부린 것일 뿐 진짜로 아기를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을 갖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클라이맥스 장면이었던 터라 촬영이 녹록지 않았다. 정서적으로 지쳐 있던 임시완에게 힘이 돼준 건 최종 라운드 경쟁자 기훈 역의 이정재였다. 그는 “내 얼굴을 비추는 장면을 찍을 때도 선배님은 카메라 사이를 비집고 시선을 주며 같이 연기해주시더라”며 “멋있는 선배이자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황 감독의 칭찬도 힘이 됐다. 임시완은 “감독님이 원래 앞에서 칭찬하는 성격이 아니신데 ‘명기라는 인물을 복합적으로 잘 표현해줬다’는 말씀을 해주셨다”며 “저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코멘트였다. 그 한마디가 명기로서 욕먹는 상황을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 됐다”고 얘기했다.
최근 작품에서 유독 악역이 잦았다. 영화 ‘비상선언’(2022)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2023), ‘오징어 게임3’에 이어 차기작 ‘사마귀’에서도 청부살인업자를 연기하게 됐다. 임시완은 “악역은 그만하고 싶다. ‘오징어 게임’으로 더 확신이 생겼다”면서 “저의 부드럽고 선한 모습을 어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3’는 지난달 27일 공개 이후 연일 글로벌 시청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제가 출연한 작품이 전 세계에서 이렇게 크게 관심 받는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반면에 그만큼 명기에게 욕할 사람이 많아지겠단 생각도 듭니다. 이미 여러 언어로 인스타그램 메시지가 오고 있어요(웃음). 이왕 욕먹을 거 확실하게 먹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만큼 향후 할리우드 등 해외 진출을 타진해볼 만도 하다. 임시완은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도전하겠지만 그것만을 위해 달려가진 않을 것”이라며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 작품도 여느 할리우드 작품보다 더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 그런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게 축복”이라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