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 남서쪽 도카라 열도 인근 해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최근 보름 사이 1300여 차례의 지진이 이어지고 있다. 단기간에 이처럼 지진이 집중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아쿠세키지마 등 2개 섬 마을에서 주민 46명이 섬을 빠져나왔고 앞서 지난 4일 주변 섬 주민 13명이 가고시마시로 대피했다. 잇따른 지진 소식은 유명 일본 만화가의 예지몽에서 비롯된 ‘7월 대지진설’과 맞물며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현지 선교사들은 “관동 대지진은 통상 100년에서 150년 주기로 규모 7에서 8의 강진이 반복돼 왔기에 일본 사람들은 당장 내일, 한 달 뒤 대지진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여긴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도”라고 말했다.
만화가 다츠키 료는 1999년 자신이 꾼 예지몽을 바탕으로 ‘내가 본 미래’를 출간했다. 이 작품에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등을 예견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근 7월 ‘일본 대지진설’을 다룬 이 만화가 다시 주목받으며 불안감이 확산됐다. 실제로 홍콩에서는 일본행 항공편이 일부 감축됐고 중국 외교부는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일본 동경 시부야 와 경계를 하고 있는 메구로 구(目黒区)에서 19년째 사역중인 유태호 선교사는 지난 3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에서도 ‘내가 본 미래’에 대한 관심은 갖고 있지만 현지 분위기는 내일 일어나도 우린 전혀 이게 이상한 일이 아닌 하나의 낭설로 여긴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지진 대피 훈련을 받아온 일본 사람들에게 지진은 익숙한 일상입니다. 내일 아니 한 달 일 년 언제 일어나도 당연하다고 받아 들이고 있어요. 마치 우리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도 큰 동요 없이 평소처럼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죠. 오히려 그럴 때면 일본 친구들이 ‘한국은 전쟁 나는 거 아니냐’며 저를 걱정해주곤 합니다. 지금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진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일본은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네 개의 주요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만약 난카이 해곡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코쿠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면 오사카 나고야 시즈오카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도”라고 강조했다.
유 선교사는 10년 전인 3월 11일 일본 도호쿠(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거대지진을 직접 겪었다. 당시 15층 아파트의 14층에 거주하던 그는 “설교 준비를 하며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책상 앞 찬장이 ‘통통통’ 소리를 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며 “동시에 아파트 전체가 짝짝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서 건물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많은 이들이 일본을 떠났습니다. 주변에서도 ‘이젠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저는 끝까지 이 곳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제게 맡기셨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지진이 난다고 선교지를 떠난다면 제가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웃음)”
지진과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관동 지방의 한 익명의 목회자도 “일본인들이 ‘7월 대재해설’에 관심은 두지만 대부분 근거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늘 그렇듯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100년에 한 번 발생한다는 대지진이 향후 10~20년 안에 일어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7월 지진 예언에는 근거가 없다고 본다’고 말한다”면서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은 하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관서 지방에서 도쿄기독교대학의 약 130여명의 신학생 등을 포함해 기독교 관련 학업자들과 함께 사역 중인 한 목회자는 “일본 뉴스에서도 해당 만화를 여러 차례 다뤘고 실제 지진 발생 가능성을 두고 TV 토론도 자주 방송된다”고 전했다. 그는 “학생들 대부분은 ‘난카이 대지진이 언젠가는 온다는 건 알고 있지만, 온다면 오는 것이고 지금은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베에 계신 부모님께 여쭤보니 ‘대지진이 온다면 오는 거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막겠느냐’며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건 우리의 사명이 거기까지인 것이고 그 순간 주님 품에 안기면 된다’고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정말 대재앙이 온다면 지금 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삶은 결국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려움보다 믿음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 참된 제자의 길 아닐까요.”
일본 기상청은 이날 도카라 열도 근해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오후 2시 7분쯤 발생한 이번 지진으로 최대 진도 5강의 흔들림이 관측됐으며 이는 선반의 식기나 책이 떨어지고, 뭔가를 붙잡지 않으면 걷기 어려운 수준이다. 기상청은 “지진 예측은 불가능하며,대지진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하면서도 “지진 활동이 계속되는 만큼 철저한 대비와 안전 확보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