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에 미국 땅을 밟은 중졸 농사꾼은 연 매출 800만달러(약 109억원)의 한인 사업가로 성장한 뒤 세계 한인 경제인을 연결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미국 내 5만명의 한인 기업가와 상공인을 대표하는 비영리 경제단체의 대표로서 한국 중소기업의 미국 수출을 돕기 위한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를 미국 현지에서 처음 개최하는 등 결실도 보고 있다.
내년 인천 대회를 앞두고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와 협의차 방한한 황병구(71) 미주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미주한상총연) 총회장의 이야기다. 황 회장은 최근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K-컬처 열풍과 한국 제품의 품질 경쟁력에 힘입어 중소기업에 큰 기회가 왔다”며 “관련 기관과 협력해 한국 기업의 국제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 5월 미주한상총연 30대 총회장으로 재선출됐다. 28대 회장을 역임한 그는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를 통해 한국과 미국의 경제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2023년 이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그는 처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대회를 개최하고 중기중앙회장을 명예대회장으로 세웠다. 600여개 기업이 참가해 6억5000만달러(8876억원)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올해 4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대회에선 8억달러(1조924억원) 계약이 성사됐다. 황 회장은 “‘친목 단체에서 실질 단체로’라는 기조 아래 내부 개편과 회의 구조 개선에 나선 결과,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미주한상총연은 내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의 한인 경제인을 초청하는 ‘한국중소기업상품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황 회장은 “재외동포청, 중기중앙회, 중기부와 함께 직접 바이어와 셀러를 연결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1만평의 서양란(호접란) 농장을 운영하며 미 전역에 유통하고 있다.
경북 청송 출신인 그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실업계 고교 1학년 때 중퇴하고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도왔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농촌진흥청을 통해 영농기술을 배우고 검정고시에 치르는 등 끊임없이 도전했다. 새마을지도자, 마을금고 회계로도 일했다. 그러던 2001년엔 미국행을 결심했고, 정부와 지역협동조합 지원을 끌어내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사업체를 세웠다. 황 회장은 “영어는 안 됐지만, 몸으로 보여주는 게 최선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호접난의 실내 공기정화 기능과 미국인의 꽃 소비 문화가 맞물려 사업은 빠르게 확장됐다.
그는 자재 하나까지 국산을 고집했다. “파이프 하나도 국산을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이민만큼 신앙생활도 늦깎이였다. 불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미국 이민 중 한 장로의 삶에 감동해 교회에 나갔다. 2007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위기를 겪던 중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
당시 황 회장의 농장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었고, 월 100만 달러씩 손실이 났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더해달라”며 처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이후 지역 농업협동조합장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가 생겼고, 협동조합의 도움으로 총 1억7000만 원이 공급됐다.
황 회장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생겼고 그날 이후 기도는 내 일상이 됐다”고 했다. 이어 “지금 하는 일이 사명이라 여길 수 있는 건 하나님이 주신 마음 덕분”이라며 “신앙은 내 삶과 비즈니스의 중심축이다. 무너질 때는 붙들어주고, 잘될 때는 교만하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