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저 그런 대회로 생각됐다. 마치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듯 마지못해 열어 주는 듯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대회 퀄리티가 업그레이드 되는 걸 보면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6회째인 올해 대회에서 남자 골프도 채리티 방식으로 충분히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목도하면서 ‘명품 대회’로 인정을 하게 됐다.
지난달 29일 옥태훈(27·금강주택)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KPGA투어 군산CC 오픈이다. 이 대회는 대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산CC가 스폰서다. 군산CC는 프로들 사이에서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선수는 있을지언정 한 번만 찾은 선수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프로를 배출한 곳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총 81홀 코스에서 매년 다양한 종류의 아마, 프로 골프 대회가 열리고 있다. 2007년 개장 이후 이 골프장을 밟지 않은 프로 골퍼는 한 명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한국 골프의 성지’로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군산CC 오픈이 배출한 스타 플레이어들은 다수 있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던 2020년 대회 우승을 지렛대 삼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진출, 통산 3승을 거두고 있는 김주형(22·나이키)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DP월드투어서 활동하고 있는 김민규(24·종근당), 아마추어 시절인 2023년에 이어 작년 대회까지 2연패에 성공한 뒤 지금은 LIV골프로 이적해 활동하고 있는 장유빈(23) 등이 군산CC 오픈이 배출한 대표적 선수들이다.
전 세계 골프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회는 PGA투어 ‘명인 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 가장 플레이해보고 싶은 골프장은 마스터스 개최지인 오거스타 내셔널GC다. 그런 이유로 모든 투어 대회는 마스터스를, 지구상 모든 골프장은 오거스타 내셔널GC를 닮아 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런 명성과 평판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엄청난 경제적 비용과 노력이 지불돼야 한다. 마스터스를 주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GC는 매년 코스를 리뉴얼 한다. 대회는 별도의 스폰서 없이 치러진다. 상금은 중계권료, 입장료, 각종 기념품 판매 수익금 등으로 확정돼 3라운드가 시작되기 직전에 발표한다.
그런 점에서 군산CC 오픈 주최사인 군산CC는 오거스타 내셔널GC와 닮은 점이 많다.
먼저 1년여에 걸쳐 기존 회원제(리드, 레이크 코스) 18홀에 대한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했다. 페어웨이 초종을 벤트 그래스에서 중지로, 해저드는 갈대와 수초를 완전히 제거해 시야가 확 트이게 했다.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던 벙커도 완벽하게 재정비했다. 군산CC의 자랑인 곡선미(曲線美)를 훼손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그린 주변 곳곳에 직벽 벙커를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특히 1번 홀 페어웨이 벙커가 압권이다. 독특한 벙커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 캐봇 시트러스 팜스 카루 코스를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린은 적절하게 언듈레이션을 배치한 데다 스피드를 평상시에도 3m가 유지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국내 최장 전장과 최신 시설을 갖춘 드라이빙 레인지, 특급 호텔 수준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새롭게 단장한 골프텔, 그 앞에 조성된 수 만평 규모의 ‘폭포 가든’ 등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대변신을 했다.
올해 군산CC 오픈 우승자인 옥태훈은 “코스가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나흘간 보기 2개에 버디 21개를 잡아 19언더파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완벽한 관리 덕”이라며 “특히 퍼팅이 좋았는데 속임수가 전혀 없는 그린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대회 코스를 향해 엄지척을 해보였다.
코스 리뉴얼에 투입된 비용은 어림잡아 수 백억원은 족히 넘을 듯하다. 그렇다면 군산CC가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코스를 리뉴얼한 목적은 뭘까. 글로벌 스탠더드에 전혀 손색이 없는 토너먼트 코스를 만들겠다는 일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탄생한 코스 이름이 ‘토너먼트 코스’라는 것에서 그것은 충분히 유추된다.
군산CC 오픈은 상금 확정 방식도 마스터스와 비슷하다. 작년부터 공동 스폰서 없이 단독으로 대회를 주최하고 있는데 기본 총상금 7억원에 프로암 판매와 1∼3라운드의 갤러리 입장권, 식음료, 대회 기념품 판매 수입 등을 보태 최종 상금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최종 라운드 수익금은 이듬해 총상금으로 이월된다. 이렇게 해서 올해 대회 총상금액은 역대 최고액인 10억484만3000원으로 확정됐다. 우승 상금도 2억96만8600원으로 작년보다 많아졌다.
군산CC 오픈의 총디렉터인 군산CC 김강호 부회장은 “군산CC는 우리나라 골프 대중화의 요람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토너먼트 코스는 우리 선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량 연마의 장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는 이어 “군산CC 오픈은 우리 선수들이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아직은 부족하지만 올해 대회에서 가능성을 봤다. 내년에는 더 많은 관심과 호응으로 대회의 질적 향상을 꾀해 KPGA투어를 대표하는 대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보였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다고 했다. 군산CC 오픈은 시작은 초라했고 존폐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주최 측의 각고의 노력으로 그 힘든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명품 대회’로 거듭날 준비를 마친 상태다. 그런 점에서 ‘발전’을 화두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거기서 해답을 찾는 군산CC의 행보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