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다시 주목 받는 가나안 농군학교

입력 2025-07-03 13:17
경남 밀양 무안면의 가나안농군학교(영남) 전경.

‘근로 봉사 희생’의 가치를 외치며 척박한 땅을 옥토로 바꿨던 가나안 정신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사람을 변화시켜 공동체와 국가의 변화를 이끄는 가나안농군학교의 교육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일 경남 밀양 가나안농군학교(영남) 교장실에서 이현희 설립자와 김성우 이사장, 김경철 부교장, 김태영 글로벌비저너리스쿨 설립 준비위원장을 만나 학교운영 및 비전에 대해 들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고(故) 김용기 장로가 1954년 ‘조국이여 안심하라’는 구호 아래 설립한 농촌 계몽 운동의 산실이다. 단순히 농사 기술을 가르치는 곳을 넘어 ‘먹기 위해 일하지 말고 일하기 위해 먹자’는 개척 정신을 통해 잠자는 의식을 깨우고 삶의 태도를 바꾸는 전인교육의 현장이다.

가나안 운동의 목표는 명확하다. 한 사람의 변화를 시작으로 그가 속한 가정과 일터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이룬다는 것이다. 교육은 ‘근로 봉사 희생’의 정신을 깨우는 정신교육과 유기농 재배법 등 실질적 기술을 전수하는 ‘농업이론 및 실기교육’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가나안 정신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2012년 학업 의욕이 없던 고등학생 30명이 가나안농군학교(영남)에서 훈련을 받은 뒤 이듬해 그중 한 명이 전교 회장 후보로 나서는 등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2014년에는 노사 갈등이 깊었던 한진중공업 전 임직원이 교육에 참여한 뒤 노조위원장이 “이런 교육이라면 언제든 받겠다”며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카멜리아힐을 조성한 양언보 회장은 “1963년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배운 개척정신이 흔들림 없이 동백 사랑에 매진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가나안 교육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평생의 지표가 됨을 증명했다.

1998년 부산에서 시작해 2003년 경남 밀양에 터를 잡은 가나안농군학교(영남)는 이러한 가나안 정신을 계승하면서 시대에 맞는 교육을 펼치고 있다. 이현희(75) 설립자는 “밀양은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이자 지역 사회와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한 곳”이라며 설립 배경을 밝혔다.

이현희 설립자가 가나안농군학교(영남) 설립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밀양은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이자 지역사회와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한 곳”이라고 말했다.

초기에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교육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공무원 기업 직장인 학생 등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김경철(44) 부교장은 “참가자들은 처음엔 열악한 환경에 당황하지만 함께 땀 흘리고 고생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며 “짧은 교육이지만 가슴에 변화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설립자 역시 “가나안 교육의 핵심은 의식 개혁이다. 죽어 있는 의식을 깨워 생활 혁명을 이루고 사회에 본보기가 되는 복민(福民)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우 이사장이 지난 1일 가나안농군학교(영남) 본관 1층 강의실에서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가나안농군학교(영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성우(70) 이사장은 ‘가나안농군학교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가나안의 설립 정신인 ‘근로 봉사 희생’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며 삶이 곧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돼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것이 가나안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된 시대에 맞는 비전을 품고 이기적인 세상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며 “국내외 가나안농군학교를 통해 게으름에서 벗어나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로 성장한 사례들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가나안농군학교를 통해 선한 일꾼을 세우는 소망을 품고 AI 시대에 더 필요한 상담 심리 교육 등 인간적인 영역을 강화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전의 중심에는 대안학교 GVS(Global Visionary School) 설립 계획이 있다. 단기 교육의 한계를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나안 정신을 체화한 글로벌 리더를 키워내겠다는 포부다.

이현희(왼쪽 두 번째) 설립자와 김성우(오른쪽 두 번째) 이사장이 학교 설명회를 마치고 학교 관계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태영 글로벌비저너리스쿨 설립준비위원장은 “GVS는 가나안의 근로 봉사 희생 정신을 모든 커리큘럼에 투영시켜 아이들이 행복하게 배우고 성장하는 명품 학교가 될 것”이라며 “가나안이 가진 전 세계 네트워크를 활용해 학생들이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재로 자라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가나안농군학교는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를 읽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하려면 방법이 보이고 안 하려면 핑계가 보인다’는 한 수료생의 소감처럼 가나안농군학교(영남)는 사람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밀양=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