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살핀 뒤 주머니에 손 넣지 않기, 가게를 나서기 전까진 구매한 물건의 포장을 뜯지 않고 영수증을 항상 가지고 있기. 미국 작가 오스틴 채닝 브라운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 귀 따갑게 들은 상점 방문 시 주의 사항이다. 물건을 훔치지 않고 “돈 주고 샀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항상 증명해야 해서”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늘 백인을 뜻했다.
브라운의 회고록 ‘아임 스틸 히어’는 백인 남성의 이름을 가진 흑인 여성이 백인 밀집 지역 내 학교와 교회, 직장에서 겪은 인종 차별을 유쾌하고도 신랄하게 고발한다. 인종 정의(racial justice) 운동가인 저자가 이 책을 쓴 건 일평생 매사 백인을 의식하며 사는 삶에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책의 첫 장 제목도 ‘백인들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이다. 백인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미국 오하이오주 털리도에서 성장한 그는 초·중·고교 내내 “한 줌 밖에 안 되는 흑인”으로 살았다.
백인 위주 사회에 피로감을 느낀 건 저자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딸에게 백인 남성 이름을 붙임으로써 “사람들의 허를 찌르기”로 작정했다. 이름 탓에 여러 불편을 겪은 그가 “왜 이름을 이렇게 지었느냐”고 불평하니 이내 속내를 밝힌다. “너도 입사시험을 쳐야 할 날이 올 거야. 우리는 네가 적어도 면접까지는 확실히 올라가길 바랐단다.” 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실제 그는 여러 기업 면접장에서 입실 전 “이름이 확실하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저자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기독 비영리기관인 직장과 모교회인 백인 교회에선 건물에 들어설 때마다 “지역 원조 센터를 찾느냐” “무료 배식이 필요한가”란 질문을 받는다.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를 여러 가닥으로 땋아 위로 올려 묶은 ‘파인애플 머리’를 하고 출근하면 백인 동료가 “정말 멋있다”며 스스럼없이 손을 뻗는다. “놀랄 만큼 발음이 정확하다”는 말을 듣거나 외모가 전혀 다른 흑인 직원과 혼동하는 백인 동료를 여럿 만난다.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아무 반응이 없더니만 친절한 백인 동료가 “오스틴이 하려는 말은 이거 같다”며 같은 말을 반복하면 갑자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자는 “이것이 우리가 매일 겪는 사소하지만 짜증스러운 일이자 백인이 보내는 미묘한 메시지”라며 “인종 통합 상황에서 ‘백인성’(whiteness)은 추켜세우고 ‘흑인성’(blackness)은 깔아뭉갤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백인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온 그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발견한 곳은 흑인 침례교회다. “(흑인 교회) 목사의 설교에 나오는 예수는 흑인처럼 말했고 우리와 비슷한 고난-불의와 배신, 욕설-을 겪었다.…천천히 나는 내 안의 흑인성을 찾았다.” 그가 미국 내 흑인을 향한 뿌리 깊은 편견과 보이지 않는 차별에 적극 맞서게 된 계기다.
조직 내 구조적 인종주의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저자는 일부 백인에게 ‘불화를 조장하는’ ‘부정적인’ ‘유해한’ 등의 수식어를 얻는다. 그 역시 백인에게 피곤한 존재가 된 셈이다. “백인이 표준인 세상”에서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온 저자지만 2015년 백인우월주의 청년의 흑인 감리교회 총기 난사 사건을 접하며 절망감에 빠진다. “내게 있어 희망은 천 번쯤 죽었다.…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랐지만,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은 더 나아지길 바랐지만 희망은 죽었다.”
아예 희망을 거둔 건 아니다. 희망은 죽었지만 약자의 상처를 싸매고 이들과 권력자를 화해시키는 건 “십자가를 지고 평화를 가져온 예수님의 일”이라 믿어서다. 지금도 계속되는 흑인 혐오를 볼 때마다 저자는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오스틴, 희망은 어디 있니?” “있어. 다만 그늘에 있을 뿐이야.” 어둠 속에 상존하는 희망이 언젠가 변화를 가져오리라 기대하며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2018년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등에서 호평받은 수작이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란 구호로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2년 뒤엔 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북클럽 도서로 선정돼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내 이야기는 백인을 비난하기 위한 게 아니”라 “기독교인이 인종 편견을 버리고 흑인을 볼 것을 요구하기 위함”이라는 저자의 말은 다문화 사회에 들어선 우리 사회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