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이종범 전 코치의 갑작스런 퇴단이 적잖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방송 출연을 위해 시즌 중 팀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구계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동시에 유니폼을 벗은 뒤 설 곳을 잃은 은퇴 선수들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 원로 야구인은 2일 국민일보에 “프로야구 시즌 도중 현역 코치를 빼간다는 발상 자체가 굉장히 불쾌하다”며 “한국 야구를 대표하고 이끌어가는 이종범이 오죽했으면 그런 결정을 했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이번엔 잘못된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도 20~30명의 전·현직 야구인을 만나는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야구계 전반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전 코치는 지난달 27일 KT 위즈를 떠났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감독으로 합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한국 야구 전체의 발전’을 언급하며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책임감과 프로 의식을 저버렸다는 비판이 일자 사과도 했다.
문제는 퇴단 시점이다. 순위 싸움이 한창인 시즌 중에 구단과 동료, 팬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채 떠난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 전 코치 외에 다른 현역 지도자들까지 프로그램 섭외 대상이 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야구계가 크게 술렁였다.
그의 퇴단이 오로지 프로그램 성공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도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오는 9월 첫 방송을 예고한 JTBC 최강야구는 전 제작사 스튜디오C1과 지식재산권(IP)을 두고 갈등을 빚어 기존 출연진을 모두 대체해야 했다. 제작·방영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해서 현역 지도자를 빼낸 꼴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야구 원로는 “예능을 미끼로 언제든 현역 지도자를 데려갈 수 있는 선례가 됐다”며 “방송이 인기를 좀 끌었다고 야구판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사태가 현역·은퇴 선수 및 지도자 간 갈등을 조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야구인들이 야구 부흥에 도움을 주는 예능물의 등장 자체를 반기지 않는 건 아니다. 모든 은퇴 선수가 지도자를 할 수도 없다. 예능물이 은퇴 선수들의 새로운 일자리가 될 수도 있다. 이 전 코치는 은퇴 후 야구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후배들을 도울 길을 찾고 싶었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최고 인기를 누리는 프로야구 선수도 은퇴 후엔 생계 걱정을 한다. 이는 스포츠계 전체의 과제다.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이 은퇴 선수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제 갈 길을 찾는 건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포츠계의 오랜 고민인 은퇴 선수의 진로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여러 주체가 참여하는 논의를 통해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