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둠에 길 잃었던 청년 경찰, ‘주는 삶’에서 빛 찾았다

입력 2025-07-02 21:00
박성식 경사가 필리핀의 한 학교에서 현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함께하고 있다. 박 경사 제공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 박성식(34) 경사의 휴가 계획은 여느 청년들과 다르다. 4교대 근무로 밤낮없는 일상 이후 주어지는 귀한 휴가,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꿈꿀 그 시간을 1년에 최소 두 번 해외 선교를 떠나는 데 사용한다. 다른 모든 긴 휴가를 포기하는 삶이기도 하다.

이 특별한 선택은 범죄 현장에서 얻은 깊은 마음의 병을 씻어내려는 절박한 노력에서 시작됐다. 그 역시 처음엔 여느 누구나처럼 해외여행을 택했지만, 화려한 관광지에서 돌아온 뒤 밀려오는 공허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찾은 진짜 답은 ‘주는 삶’에 있었다.

박성식 경사가 2일 경기 용인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 경사는 2일 경기 용인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절망에서 희망을 찾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지난달 29일 키르기스스탄 해외단기선교에서 돌아온 그는 3년간 5개국에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썼다고 한다. 이제 그의 ‘주는 삶’은 선교지를 넘어, 후원금을 마련하는 소모임 활동과 범죄자를 대하는 일터에서의 마음가짐까지 바꾸어 놓았다.

제복의 무게, 불신으로 보낸 3년

이러한 변화는 긴 방황의 시간을 거친 뒤에야 찾아왔다. 경찰 임용시험에 한 차례 낙방한 뒤 거머쥔 합격이라 기쁨은 더 컸지만, 2015년 말 제복을 입고 마주한 현실은 그의 기대를 배반했다. 그는 “수많은 비극을 접하며 마음이 병들었다. 한때 꿈꿨던 결혼이나 출산 같은 평범한 미래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박성식 경사가 순찰차 안에서 제복을 입고 근무 중인 모습. 박 경사 제공

그의 일기에는 ‘끔찍한 현실에 익숙해지면 사람을 비관적으로 보게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나 사랑 같은 마음은 사라진다’며 당시의 고뇌가 담았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고, 쉬는 날엔 집에만 틀어박혔다.

여행의 끝에서 만난 다른 길, 선교

방황하던 그가 찾은 변화의 시작은 2023년, 필리핀으로 떠난 해외 선교였다. 그는 “여행은 다녀오면 추억이 희미해지고 그 순간만 즐겁지만, 선교는 끝나고 돌아와도 내 삶에 대한 기대와 행복이 더 커진다. 다음 선교가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태국 매파 라이트스쿨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하트와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경사 제공

선교지에서 그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경험했다. 낡아서 지붕도 없는 집, 오염된 물, 옷 한 벌로 몇 달을 버티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한국에서 불행하게 살았고, 이 아이들은 가진 것 없이도 너무 행복하게 해맑게 사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아이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필리핀 교도소에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수감자들이 환한 미소로 그를 반겨줄 때, 경찰로서 가졌던 적대적인 마음 때문에 그는 깊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그들이 나를 보고 웃어주고 환영해줄 때, 나의 마음은 그렇지 못해 더 미안했고 하나님께 너무 죄송했다”고 당시 심정을 기록했다. 박 경사는 당시의 경험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경찰이 된 후 처음으로 범죄자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비로소 제 소명을 다시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주는 삶’의 실천, 일상과 현장을 바꿨다

이 깨달음은 그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그는 “경찰로서 법을 집행하는 것만이 제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사람들을 겪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현장에서 그는 상대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마음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들었다. 그의 진심에 마음을 연 당사자는 “내 얘기를 이렇게 들어준 사람은 없었다. 너무 고맙다”고 전했다고 한다.

박성식 경사가 태국 매파 라이트스쿨에서 한 아이의 팔에 스티커를 붙여주고 있다. 박 경사 제공

1년에 최소 두 번 이상 해외 선교를 떠나지만, 그것만으로는 주는 삶에 대한 마음을 다 채울 수 없었다. 해외선교 기회가 많은 만나교회(김병삼 목사)를 출석하면서 교회에선 자신의 재능을 살려 청년들에게 경제 지식을 가르치는 소모임을 함께한다. 여기서 모인 회비 전액을 해외 선교 활동에 후원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삶은 자연스레 주변으로 흘러간다. 그의 모습을 보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동료도 여럿이다.

그의 변화는 개인의 삶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 한때 그는 결혼과 가정을 가장 두려워했다. 하지만 ‘주는 삶’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그의 생각도 바뀌었다. 그는 이제 결혼을 ‘나의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더 큰 행복을 함께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태국 매파 라이트스쿨에서 진행된 해외 선교를 마치고 박성식 경사와 동료 선교팀, 현지 아이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 경사 제공

가정에 대한 용기를 회복한 그의 시선은 이제 더 먼 곳을 향한다. 현재의 후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먼 훗날 선교지 아이들이 마음껏 배우고 예배할 수 있는 작은 교회와 학교를 짓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는 “‘내가 만든 작고 밝은 세상에서 자란 아이들이 훗날 더 크고 밝은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며 “내 삶이 그 밀알이 되기를 기도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용인=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