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죄는 공포’ 속 탈출…이스라엘 교민 12일 전쟁 생존기

입력 2025-07-01 15:01 수정 2025-07-01 23:01
이강근 이스라엘한인회 회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K라운지에서 교민 100명의 피란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12일 전쟁’이 지난달 24일 미국의 중재로 휴전에 들어간 가운데 당시 교민들이 느꼈던 극심한 공포가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전쟁 중 교민 100명을 인접국 요르단과 이집트로 안전하게 피신시켰던 이강근 이스라엘 한인회 회장을 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K 라운지에서 만났다.

이 회장은 이번 전쟁을 ‘심장을 죄는 공포’로 기억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이스라엘에 살며 이런저런 충돌을 경험했지만, 이번처럼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면서 “이란에서 이스라엘까지 15분이면 도착하는 탄도미사일이 방공망을 뚫고 떨어질 때의 위력과 공포가 충격적이었다”고 털어놨다.

히브리대 정치학 박사이면서 장로교 목사인 이 회장은 미사일과 자폭 드론이 날아다니는 이스라엘에서 여행객과 유학생 등 교민 피란 행렬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요르단과 이집트 한인회와 긴밀히 소통하며 안전한 탈출을 지원했다.

이스라엘 한인회는 무력충돌 직후 그 어떤 나라 교민회보다 발 빠르게 자국민 피란 대책을 마련했다. 지난달 15일 이스라엘 교민이 요르단으로 급히 이동 중이란 사실이 국민일보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지면서 이스라엘과 요르단, 이집트의 한국대사관까지 지원에 나섰다.

무력 충돌이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에 있던 성지순례객과 출장자, 유학생 등 단기 체류자들은 완전히 발이 묶였다. 하늘길도 모두 닫혔고 사이렌이 울린 뒤 어느 방공호로 피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교민들은 집이나 동네마다 정해진 방공호로 피신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했지만 단기 체류자들은 호텔 객실이나 기숙사 등에서 완벽한 고립에 내몰렸다”면서 “목회자로서 이런 분들을 사지에 둘 수 없어 한인회 임원들과 단톡방부터 만들고 긴급 피란 계획을 수립했다”고 전했다.

12일 동안 이스라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4만여명의 방문자가 있었다고 한다. 딱히 이스라엘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던 이들 중엔 탈출을 시작한 이스라엘 한인회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일본인 3명이 이집트 피란 버스에 탑승 신청을 했었다”면서 “비슷한 시기 일본 정부도 자국민 탈출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와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상황이 이처럼 매우 급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회장은 이집트 피란 길을 ‘역(逆) 엑소더스’라고 표현했다. 역 엑소서스란 3400여년 전 애굽(이집트)을 탈출해 가나안(이스라엘)으로 향했던 출애굽 여정의 반대 방향으로 탈출한 걸 의미한다.

하지만 타바 국경에서 시작된 10시간 버스 피란길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우리 외교부는 현재 이 지역을 여행경보 3단계(출국 권고)로 설정했다. 이집트의 한국대사관도 교민 버스 이동에 난색을 표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수차례 확인과 대비 끝에 피란 버스는 24일(현지시간) 새벽 카이로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 회장은 ”우리 총영사도 마중 나오시고 이집트 한인회는 물론이고 카이로의 한식당에서 도시락도 준비해 주셔서 교민들이 여독을 풀 수 있었다”면서 “요르단 암만과 마찬가지로 이곳 교민들이 민박도 제공해 주셔서 안전한 쉼터에서 쉴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번 일로 얻은 게 많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올 8~9월 중 이스라엘과 요르단, 이집트 한인회 회장단이 만나 각국이 어려움을 겪을 때 교민들의 안전을 위한 3국 협력체계 구축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 성지의 평화를 꿈꾼다고 한 이 회장은 이사야 19장 23절을 인용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아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아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아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아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