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크리에이터의 네트워크 플랫폼 ‘아트워커’ 전지 대표

입력 2025-07-01 04:30
전지 리프로덕션 대표가 최근 서울 마포구 아트워커 플랫폼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1. 프로필은 배우의 첫인상이자 필수 홍보 자료이자 오디션 기회를 얻기 위한 기본 도구다. 지망생들은 제작사, 캐스팅 디렉터, 에이전시 등에 프로필을 배포하거나 소속사 커뮤니티 플랫폼을 통해 공유한다. 하지만 PD와 캐스팅 디렉터 사이의 암묵적 공생관계로 인해 배우들이 공정한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오디션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2. 제작자는 제한된 시간과 예산 속에서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책임져야 하기에 리스크를 줄이려 이미 검증된 인물과 다시 작업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인재 발굴의 필요성을 알지만 현장의 책임이 제작자에게 집중되는 구조에서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

‘예술 영화 패션 음악 등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작품을 한곳에서 탐색하게 할 순 없을까. 실력 있는 전 세계 프로듀서와 제작사, 뮤지션, 배우 등 다양한 아트 워커들이 플랫폼에서 서로 만나게 할 순 없을까.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우리나라 아티스트와 해외 제작자를 연결시켜줄 순 없을까.’

창작자들에게 자유로운 표현의 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연결하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네트워크 커뮤니티 플랫폼 ‘아트워커’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만난 전지(36) 리 프로덕션 대표는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는 이사야서 58장의 말씀에서 출발한 회사로 법인명 ‘리 프로덕션’에는 ‘다시 세운다(Rebuild)’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전지 대표의 이름을 들으면 한 번쯤 다시 되묻게 된다. 그는 웃으며 “이란성 쌍둥이 동생 이름이 ‘전능’이에요. 부모님이 ‘전지전능’이라는 신앙적 의미를 담아 우리 이름을 지으셨다”고 설명했다.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를 졸업 후 프로덕션 패션브랜드 음반 업계 등 다양한 분야의 엔터테인먼트 일해 온 전 대표는 “이쪽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사람을 찾거나 또는 실력이 있는데 기회가 없어서 닿지 못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마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특성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뢰의 문제 때문에 지인 소개로 일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력 외의 요소로 결정되는 것을 보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글로벌하게 확장되고 있는데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해외에서도 동일한 문제들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이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게 아트워커의 시작이었어요.”

실력으로 승부하는 플랫폼 ‘아트워커’

지난 2월 론칭한 ‘아트워커’ 애플리케이션(앱)은 작품을 만들고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관행 속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공정하게 기회를 얻고 제작자들이 다양한 인재들과 신뢰 속에서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전했다.

‘아트워커’앱을 런칭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전 대표는 셀럽 위주보다는 숨겨진 아티스트 200여명을 찾아 라인업을 만들었다. 지난 2월 론칭 이후 입소문을 타고 현재 약 3000명의 아티스들이 등록돼있다.

아티스트들이 ‘아트워커’에 가입하면 자신의 전문분야 및 경력, 개성과 작품, 커리어 등을 보여주는 포토폴리오를 등록 할 수 있게 돼 있다. 반대로 클라이언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나 프로젝트의 정보를 올리는데, 플랫폼에는 매주 50~60여개 이상의 다양한 프로젝트가 등록된다. 아티스트들은 프로젝트의 요건을 확인하고 자신의 포토폴리오를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 대표는 “론칭 4개월 만에 단순 사용자들이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특정 사용자 3000명이 모였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데이터”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제게 ‘당신은 노동 쪽이냐 시장 쪽이냐’고 질문합니다. 나는 ‘시장을 바꾸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실력있는 아티스트들이 이미 준비가 돼 있다면 얼마든지 기회가 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선수 명단을 만드는 것이죠.”


‘아트워커’에는 12개(영화 TV 광고 미디어 음악 디자인 콘텐츠 사진 패션 순수미술 공연글쓰기)의 예술 분야가 세분화돼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아티스트, 제작자가 활동 중인 분야(6월 기준)는 음악과 영화다. 지난 3월에는 넷플릭스 ‘도라이버: 잃어버린 나사를 찾아서’ 예능프로그램 박인석 PD와 무명의 작곡가가 매칭 돼 협업 성과를 내기도 했다. 프로그램 OST 제작에 32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총 30개의 데모곡을 보내오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전 대표는 “우리가 먼저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박 PD에게 지원자들의 음악 리스트를 전달했는데 퀄리티가 높고 너무 쓰고 싶은 곡이 많아 행복한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며 “최종 OST 곡으로 선정된 ‘지금 시작이야’를 만든 맥켈리 작곡가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20년 경력의 실력 있는 작곡가였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제작자들은 한정된 기회를 누구에게 줄지 늘 고민하지만, 그 기회를 바라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와 부르심이 있다고 믿기에, 아티스트들이 ‘기회가 없다’는 이유로 창작을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기회는 많고 세상은 넓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고, 준비된 이들이 언제든 기회를 만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현장 경험 녹인 ‘시나리오 노트’ 영화산업 새 시도
전지 리프로덕션 대표가 최근 서울 마포구 아트워커 플랫폼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지난 9일에는 국내 최고의 영화 프로듀서들과 함께하는 시나리오 피드백 서비스 ‘시나리오 노트’도 론칭했다. 전문 프로듀서들이 피드백을 받길 원하는 신청자의 시나리오를 검토한 뒤 제작자의 시선에서 구조와 시장성, 장르적 특성을 분석하고 영상 통화를 통한 피드백을 통해 실질적인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시나리오 노트’에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 ‘말아톤’ ‘봉오동 전투’ 등을 제작한 신창환 프로듀서를 비롯해 ‘설국열차’ ‘마더’ ‘뷰티 인사이드’ 등에서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작업한 박태준 프로듀서, 넷플릭스 ‘트리거’와 ‘추격자’의 이민희 프로듀서, 7번방의 선물로 1200만 관객과 소통한 김민국 프로듀서 등이 참여했다.

그는 “현장에서 만난 시나리오 작가들은 공모전 외에는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고 완성 후에도 ‘이 이야기가 정말 가능할까’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까’라는 막막함 속에서 방향을 잃거나 구조적으로 완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제작자의 시선에서 시나리오의 구조와 가능성을 함께 진단하는 실질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작 현장을 이끌어온 역량 있는 프로듀서들과 협업해 ‘시나리오 노트’ 서비스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누군가 다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

‘아트워커’ 앱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17개국에서 다운로드 되고 있다. 전 대표는 앞으로도 해외 아티스트와 제작자들과 함께 국경을 넘어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전 대표는 “아트워크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아티스트, 만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스겔서 47장 12절 말씀처럼 성소에서 나온 물로 인해 사람들이 먹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작은 한 귀퉁이, 한 구간, 한 길이라도 보수해 누군가 다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제 바램이자 기도제목입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겔 47:12절)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