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선교를 이어가기 위해 오는 4일 캄보디아로 출국을 앞둔 이승찬(32) 선교사가 지난 29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특별한 소식을 전했다. 그가 캄보디아에서 유도를 지도한 제자 ‘리띠’(가명)가 최근 유도 국가대표로 발탁됐다는 것이다. 리띠는 군인인 아버지의 서원 때문에 어린 시절을 승려로 보냈던 청년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승복을 벗고 ‘군인이 되겠다’는 오랜 꿈을 안고 이 선교사를 찾아왔다.
캄보디아에서는 우수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어 메달을 획득하면, 국방부나 경찰 소속 선수단에 특채되어 군인이나 경찰 신분을 얻을 수 있다. 리띠에게 국가대표 발탁은 꿈을 이룰 가장 확실한 발판이 생긴 셈이다.
더 의미 있는 변화는 리띠의 내면에서 시작됐다. 이 선교사는 훈련을 위해 매트에 오르기 전, 잠시 고개를 숙여 주기도문을 외우곤 했다. 4년간 묵묵히 땀 흘리면서 유도를 가르쳐주던 이 선교사의 모습을 유심히 보던 리띠가 최근 “왜 그렇게 하는 건가요?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라고 묻기 시작했다. 신앙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이 싹튼 것이다.
말보다 땀으로… ‘기다리는 선교’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말 대신 행동을 보이며 기다리는 것, 이 선교사가 캄보디아를 섬기는 방식이다. 그는 섣부른 복음 전파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 선교사는 “갑자기 승려가 와서 내 머리를 만지면서 기도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반문하며 “캄보디아 제자들은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다 안다. 그 친구가 먼저 다가와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런 사역 철학은 ‘유도’라는 스포츠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그는 유도의 핵심 정신인 ‘자타공영(自他共榮, 나와 타인이 함께 번영)’과 ‘정력선용(精力善用, 힘을 올바른 곳에 사용)’을 자주 언급한다. 그는 “유도 정신은 기독교의 나눔과 섬김의 가치와 매우 닮아있다”며 “상대를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며, 배운 힘을 좋은 곳에 쓰는 것을 가르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복음의 가치가 스며든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감독과 한국의 설거지 노동자
그의 사역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소년소녀가장 출신으로 방황의 시기를 겪다 신앙을 만난 그는, ‘유도’라는 재능을 들고 무작정 캄보디아로 향했다. 하지만 열악한 지원 속에서 그의 삶은 둘로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캄보디아에서는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는 감독 역할을 맡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사역 자금을 벌어야 했던 한국에서의 삶은 달랐다. 그는 “선교사가 자꾸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식당 설거지를 하고, 대리운전으로 밤을 새우며 사역비를 벌었다”고 털어놨다.
기도가 낳은 인연, ‘한국에서도 유도복을 입은 종’이 됐다
고된 시간을 버티던 그에게 협력교회인 포이에마예수교회와의 만남은 큰 전환점이 됐다. 한 카페 사장(권사)이 몸에 문신이 가득한 청년이 날마다 구석에 앉아 성경을 파고드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겨 기도를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됐다. 이 선교사의 사정을 알게 된 포이에마예수교회는 그의 비행기표와 신학대학원 학비를 지원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최근에는 한 유도 관계자에게까지 이 선교사의 사역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유도 코치로 일할 길이 열렸다. 이 선교사는 “비로소 한국과 캄보디아 양쪽에서 ‘유도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 수 있게 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물론 현실의 무게는 여전하다. 협력 교회의 지원 외에 생활비와 사역비는 직접 해결해야 한다. 1년의 절반쯤을 한국에서 일하며 버는 600여만원이 그의 1년 사역을 지탱하는 자금이다. 이 고된 여정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캄보디아에 처음 발을 디뎠던 순간을 떠올렸다.
결국 바라는 건 ‘물러남’
그는 캄보디아에 발을 내딛었을 때 설명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이 있었다고 했다. “공항에 내려 첫발이 닿았을 때, ‘아, 나 여기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뜨거운 공기, 사람들의 순수한 눈빛이 좋았다. 그냥 이 나라와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캄보디아 선교의 목표는 결국 ‘물러남’이다. 그는 자신이 세운 결실을 자랑하는 대신, 제자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선교의 완성이라고 믿는다. 이 선교사는 “이 자리는 마땅히 캄보디아인들의 것”이라며 “제자들이 우뚝 설 때, 저는 그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오직 주님만 남는 것이 마땅하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캄보디아 사역이 마무리 되는 날이 있을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며 “다음 사역지가 어디든지 유도복을 입은 주님의 종으로써 만나는 모든 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몸으로 섬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