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짓고 그림도 만드는’ 시인·압화작가 이연심씨

입력 2025-06-30 14:21
이연심 압화 작가가 벽골제창작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작품 ‘연두의 기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22년 대한민국 압화대전에서 최우수상인 농촌진흥청장상을 받았다.

작가는 작약과 등꽃 등을 하나하나 펴서 한지에 올려놓았다. 그 옆엔 등나무 가지와 부처손, 넉줄 고사리 등도 놓여 있었다. 작가는 다시 그 꽃과 잎, 가지들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다시 잘 펴서 다른 한지 위에 놓았다. 조심스런 손길이 이어지자 얼추 그림체가 자리 잡혀 갔다.

30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에 있는 벽골제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연심 압화 작가(51)를 만났다. 수필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이 작가는 최근 10년간 압화라는 또 다른 세계의 매력을 만나고 있다.

이날 따뜻한 차를 내온 이 작가는 며칠 새 물기가 빠진 각종 잎들을 자식처럼 소개했다. 조심스런 손길로 설명하는 입가엔 미소가 피어 올랐다.
이연심 작가의 작품 ‘건너와 이 숲으로.’

이연심 작가의 작품 ‘바라보기.’

압화(押花)는 꽃이나 나뭇잎을 눌러서 납작하게 만든 후에 그림이나 소품 따위를 장식하는 예술. 한 조각, 한 조각 꽃잎을 채워나가는 압화 과정은 식물이 주는 부드러움과 고요함을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부안 출신인 이 작가는 원광대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축협에서 근무했다. 2012년 수필가로 등단하고 2021년 ‘문예마을’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글 쓰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왔다.

이연심 작가의 작품 ‘들리나요 이 소리가.’

이연심 작가의 작품 '화합.'

이연심 작가의 작품 '연두의 기별.'

그러던 10년전 어느 날, 전남 구례압화박물관에 갔다가 압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정말 우연히 신세계를 봤지요. 한국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닌 것이…. 자연물로 만든 작품, 그 속에 빠졌죠.”

이 작가는 “‘꽂혔다’는 표현이 맞다”며 “이후 인터넷을 뒤지고 전국 장인들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이듬해 1주일에 2번씩 부산으로 향했다. 서영주 한국압화아카데미 이사장을 통해 새 예술세계에 깊이 빠져 들었다.

이연심 작가가 만든 소품들. 이 가운데 왼쪽에 있는 수첩과 책갈피는 김제시 고향사랑기부제의 답례품으로 정해져 인기를 모으고 있다.

3년 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자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공방을 냈다.

그리고 각종 나뭇잎을 열심히 구하고 말렸다. 밑그림도 없이 상상 속으로 크기와 원근감, 색감까지 조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했다.

자연의 색, 원색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이고 또 들였다. 작품 하나에 보통 3개월, 어느 작품은 5개월간 공을 들였다.

“저는 추상화 보다는 풍경화에 주안점을 뒀어요. 잎과 가지들이 자연스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에 감동이 이어졌죠.”

이연심 작가가 체험교실에서 압화등 만들기를 한 뒤 수강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연심 작가 제공.

만드는 즐거움에 빠지다 보니 이른 수상의 기쁨이 찾아왔다. 그는 2022년 대한민국 압화대전에서 ‘연두의 기별’이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인 농촌진흥청장상을 받았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인생 2막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창작에 몰두하다 보니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어느 해 작품을 구입해 가신 한 회사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작품이 있는 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힐링이 되더라’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많이 했다’고…”

이연심 작가가 벽골제창작스튜디오에서 자신이 말려 놓은 각종 꽃과 잎들을 가르키며 건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2년 전 벽골제창작스튜디오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작품 활동은 물론 학생들과 내방객들을 상대로 꽃비담체험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 사이 유리잔, 열쇠고리, 잔받침 등 압화를 이용한 소품도 50여가지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수첩과 책갈피는 김제시 고향사랑기부제의 답례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그는 두 차례의 개인전과 다섯 차례의 단체전을 열었다.

“압화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작품으로 남기는 과정입니다. 앞으로 작품이 더욱 살아있게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가는 “식물의 순수성과 핀셋 터치의 섬세함을 살려 작품들이 더욱 생동감 있도록 매진하겠다”고 말하며 또 한번 미소 지었다.

김제=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