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작약과 등꽃 등을 하나하나 펴서 한지에 올려놓았다. 그 옆엔 등나무 가지와 부처손, 넉줄 고사리 등도 놓여 있었다. 작가는 다시 그 꽃과 잎, 가지들을 핀셋으로 하나하나 다시 잘 펴서 다른 한지 위에 놓았다. 조심스런 손길이 이어지자 얼추 그림체가 자리 잡혀 갔다.
30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에 있는 벽골제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연심 압화 작가(51)를 만났다. 수필가이자 시인이기도 한 이 작가는 최근 10년간 압화라는 또 다른 세계의 매력을 만나고 있다.
이날 따뜻한 차를 내온 이 작가는 며칠 새 물기가 빠진 각종 잎들을 자식처럼 소개했다. 조심스런 손길로 설명하는 입가엔 미소가 피어 올랐다.
압화(押花)는 꽃이나 나뭇잎을 눌러서 납작하게 만든 후에 그림이나 소품 따위를 장식하는 예술. 한 조각, 한 조각 꽃잎을 채워나가는 압화 과정은 식물이 주는 부드러움과 고요함을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부안 출신인 이 작가는 원광대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축협에서 근무했다. 2012년 수필가로 등단하고 2021년 ‘문예마을’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글 쓰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던 10년전 어느 날, 전남 구례압화박물관에 갔다가 압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정말 우연히 신세계를 봤지요. 한국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닌 것이…. 자연물로 만든 작품, 그 속에 빠졌죠.”
이 작가는 “‘꽂혔다’는 표현이 맞다”며 “이후 인터넷을 뒤지고 전국 장인들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이듬해 1주일에 2번씩 부산으로 향했다. 서영주 한국압화아카데미 이사장을 통해 새 예술세계에 깊이 빠져 들었다.
3년 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자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공방을 냈다.
그리고 각종 나뭇잎을 열심히 구하고 말렸다. 밑그림도 없이 상상 속으로 크기와 원근감, 색감까지 조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했다.
자연의 색, 원색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이고 또 들였다. 작품 하나에 보통 3개월, 어느 작품은 5개월간 공을 들였다.
“저는 추상화 보다는 풍경화에 주안점을 뒀어요. 잎과 가지들이 자연스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에 감동이 이어졌죠.”
만드는 즐거움에 빠지다 보니 이른 수상의 기쁨이 찾아왔다. 그는 2022년 대한민국 압화대전에서 ‘연두의 기별’이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인 농촌진흥청장상을 받았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인생 2막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창작에 몰두하다 보니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어느 해 작품을 구입해 가신 한 회사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작품이 있는 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힐링이 되더라’라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많이 했다’고…”
작가는 2년 전 벽골제창작스튜디오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작품 활동은 물론 학생들과 내방객들을 상대로 꽃비담체험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 사이 유리잔, 열쇠고리, 잔받침 등 압화를 이용한 소품도 50여가지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수첩과 책갈피는 김제시 고향사랑기부제의 답례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그는 두 차례의 개인전과 다섯 차례의 단체전을 열었다.
“압화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작품으로 남기는 과정입니다. 앞으로 작품이 더욱 살아있게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가는 “식물의 순수성과 핀셋 터치의 섬세함을 살려 작품들이 더욱 생동감 있도록 매진하겠다”고 말하며 또 한번 미소 지었다.
김제=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