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 시간, 이제는 내가 먼저 기다려요”

입력 2025-06-29 18:17 수정 2025-06-29 19:04
최근 경기도 평택시 한광중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채플 시간에 학생들이 자리에 일어나 손뼉을 치며 찬양하고 있다.

“원래는 수업 시간에도 졸고, 주말엔 늦잠 자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예배드리러 아침 일찍 눈을 떠요. 저도 제가 신기해요.”

최근 경기도 평택 한광중학교에서 만난 3학년 이한결(14) 군은 “예전엔 무기력하고 방황도 했는데 지금은 밝아지고 성적도 많이 올랐다”며 수줍게 웃었다. 사춘기 정점일 나이, 이 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크리스천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채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 건 예배가 ‘신앙을 강요하는 시간’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웃고 움직이며 편안하게 머무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기분이 좋아요. 혼자만의 시간이 아닌, 함께 즐기는 시간 같아요.”

과제와 시험, 학원 스케줄에 쫓기던 일상 속에서 ‘예배’가 쉼과 회복의 시간이 되고 있다. 과거엔 지루하고 의무적인 시간으로 여겨졌던 기독교 사립학교 채플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바뀌면서 자발적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학교 채플이 축제가 된 시간
최근 경기도 평택시 한광중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채플 시간에 학생들이 율동과 함께 특송을 하고 있다.

한광중 채플도 그중 하나다. 매주 목요일 전교생이 참여하는 ‘채플데이’는 크리스천은 물론 신앙이 없는 학생들도 함께 즐거워하는 시간이다.

최근 채플데이에 전교생 800여 명이 모인 현장은 마치 작은 축제처럼 활기찼다. 기독 동아리 ‘드림(DREAM)’ 소속 학생이 “진심을 다해 예배드리는 친구들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외치자 체육관 안에는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찬양곡 ‘하나님의 사랑이’ ‘셀레브리티’가 울려 퍼지자 학생들은 서로 어깨를 들썩이며 찬양했고, 일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기도 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광중의 채플은 형식적인 순서와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의 참여도는 낮았다. 2021년 부임한 김효진 교목은 “예배가 누구나 기쁘고 참여하고 싶은 시간이 되도록” 채플 문화를 하나씩 바꿔나갔다. 학생 이름과 사진을 설교 예화에 넣고, ‘출연료’ 명목으로 아이스크림을 주며 마음을 여는 시도를 했다. “어린 시절 만난 하나님은 아이들과 평생 함께하실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함께 만든 동아리 ‘드림’은 채플 부흥의 원동력이 됐다. 동아리원 30명 중 절반가량은 비신자이며, 이 중 10명은 최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김민준(14) 군은 “기타가 좋아서 동아리에 들어왔는데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마음이 열렸다”며 “학업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솔직해지며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드림’은 매주 월요일 자발적 기도모임도 연다. 찬양 영상 촬영, 채플용 안무 제작, 인스타그램 운영까지 모두 학생 주도로 이뤄진다. 김 목사는 “모든 사역의 시작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었다”며 “저는 그저 맛있는 것 사주고 학생들을 격려했을 뿐인데, ‘목사님은 엄마 같아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예배, 부담 아닌 ‘편안한 일상’으로
지난 5월 전북 전주사대부고 체육관에서 학생 찬양팀의 인도로 예배가 진행되는 모습. 전주사대부고 제공

전북 전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전주사대부고)에서도 채플은 학생들에게 쉼과 회복, 변화의 시간이 되고 있다. 고3을 대상으로 한 ‘성품 채플’은 인격적 성장을, 고1·2 대상 ‘문화 채플’은 찬양·영상·외부 강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낸다. 성탄 채플에선 ‘보이는 라디오’, ‘연말 시상식’ 등 예능 형식을 활용해 학생들의 고민을 나누고 복음을 전한다.

14년간 사역해 온 손건 교목은 “학생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부임했을 당시만 해도 채플은 ‘억지로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으로 인식됐다. 손 목사는 강압을 없애고 찬양 인트로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예배를 여는 방식을 도입했다. 지금은 사회자 없이 찬양과 율동, 교사의 기도, 설교, 영접송이 이어지며, 인트로 영상이 나오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이 학교엔 워십댄스 동아리 ‘코람데오’, 찬양 밴드 ‘파워스테이션’ 등 기독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 매주 목요일엔 ‘청하자’(청소년 매일 성경으로 큐티하는 하나님의 자녀) 모임도 열린다. 그 안에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학생도 생겨나고 있다. 교회를 다니고 싶다며 교목실을 찾는 학생, 소년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를 시작한 학생도 있다. 손 목사는 “눈앞의 ‘즉각적인 열매’보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집중한다”며 “수치로 평가하지 않고,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예배를 이어가는 것이 학교 선교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삶을 보여주는 것이 곧 복음”
지난해 5월 부산 이사벨고 체육관에서 열린 직업인 초청 채플에서 학생들이 강사였던 박정호 교도관과 찍은 단체사진. 이사벨고 제공

부산 이사벨고등학교는 2007년 졸업생인 전성곤 교목 본인이 비신자 출신 학생이었다. 그 시절 교사들의 사랑과 채플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사벨고는 설립 초기부터 채플을 사역의 중심에 뒀다. 매년 하나의 주제 찬양을 선정해 채플, 설교, 챌린지, 티셔츠 디자인까지 통합 콘텐츠를 제작한다. 2023~2024년 주제는 예람워십의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2025년엔 히즈플랜의 ‘너는 꽃이야’였다. 전 목사는 “비신자 학생들도 부담 없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찬양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며 “입학 전엔 기독교에 부정적이었다가 채플을 통해 마음이 바뀐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직업인 초청 채플도 운영해 신앙과 삶의 연결점을 보여준다. 박정호 교도관, 강원국 작가 등 신앙을 전한 인물들을 초청해, 학생들이 “직업을 아름답게 감당하는 배경에 신앙이 있다”는 메시지를 접하게 한다. 비신자로 입학했던 2학년 박수현(16)양은 “찬양도 낯설고 기도도 어색했지만, 이제는 채플이 기다려지는 시간”이라며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채플은 모든 학생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전했다.

이사벨고등학교 세례식. 이사벨고 제공


이사벨고는 매 학기 세례식을 열며 오직 비신자 가정의 학생만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매년 40~50명이 자발적으로 세례를 신청한다. 교목실에는 간식 공간도 마련돼 있으며 자율학습 중 교목이 직접 간식을 나누며 학생들과 교감한다.

전 목사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곧 복음”이라며 “한 사람의 헌신이 한 명을 살리고, 수십 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목과 교사 한 사람이 어떻게 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복음이 전해지기도 오해되기도 한다”며 “과거 선생님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이제는 흘려보내는 삶을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평택=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