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상가 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건물 한쪽에서 뜨거운 찬양 소리가 터져 나왔다. 29일 30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행복한교회(고성선 목사)의 풍경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초라할 수 있는 작은 임대 공간이지만, 이곳은 세상의 편견과 차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 있었다.
이날 예배에서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송명희 시인의 시 ‘나’에 곡을 붙인 노래가 울려 퍼졌다.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나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하는 음성 들었네…” 성도들은 저마다의 삶으로 가사를 고백하듯 읊조렸다. 찬양을 인도하는 고성선(61) 목사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박자를 맞췄다. 발달장애를 가진 한 청년은 피아노 반주를 해내고 화음을 넣으면서 찬양 예배를 섬겼다.
이날 고 목사는 설교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라는 주제를 꺼냈다. 그는 포도원에 일찍 온 일꾼과 늦게 온 일꾼이 동일한 품삯을 받은 성경 속 비유를 들며,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다르다고 말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느낄 수 있는 ‘왜 나에게만’이라는 원망 섞인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기도 했다. 그는 “구원의 선물과 우리를 향한 부르심은 모두에게 동일하고 공평하다”고 말했다.
“장애가 행복”이라는 고백...그 뒤엔 아직 차가운 현실
고 목사는 이날 예배 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애가 오히려 ‘행복’이라고 말했다. 고 목사는 “만약 눈이 보였다면 지금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지 못했을 것이다. 장애를 가졌기에 더 간절히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내를 만났고, 쓰임 받는 도구가 되었기에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고백 뒤에는, 한국 교회 안에서 시각장애인이 겪는 현실이 있다. 고 목사는 “대부분의 교회에 점자 성경이나 찬송가 같은 최소한의 편의 시설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스크린의 영상과 자막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예배에서 시각장애인은 온전히 참여하기 어려운 이방인이 되기도 한다. 그는 “우리 시각장애인이 도움을 줘야 할 ‘짐’으로 여겨질 때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찬양할 동역자를…” 30년 ‘의리’의 시작
이 안식처는 고 목사 부부의 삶 그 자체다. 고 목사는 21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던 그는 재활 훈련 중 신앙을 만났고, “평생 주님을 찬양하며 살겠다”고 서원했다. 그는 자신의 서원을 함께 이뤄갈 동역자를 위해 “눈이 보이고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아내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후 한 선교단에서 아내 김정자(60) 사모를 만났다. 김 사모는 “태어나서 장애인을 처음 본 터라 너무 무서워 도망갔다”고 말했다. 고 목사의 끈질긴 구애 끝에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올해로 30년. 김 사모는 그 세월을 한마디로 ‘의리’라고 표현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이 맺어주신 인연이기에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팔 하나 내어주면 될 뿐”… 곁을 지키는 사역
김 사모는 자신의 역할을 대단한 사역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시각장애인분들이 바깥을 나가려 할 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 팔 한쪽을 내어주면, 그분은 여기에 의지해 넓은 세상을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24시간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도 너무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과, 장애가 있지만 당당한 성도들을 볼 때마다 내가 위로를 받는다”며 웃었다.
교회 운영은 쉽지 않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지만, 대부분 생활이 불안정하기에 그 액수만으로는 교회의 월세와 운영비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다. 부족한 재정은 모두 고 목사가 주중에 안마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고 목사는 시각장애인 목사들과 ‘소리빛 중창단’을 꾸려 다른 교회와 양로원 등에 외부 찬양 활동을 하면서 사역을 넓혀가고 있다. 인천 지역 1만2000여명의 시각장애인 중 복음화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 없이 함께 예배하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