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6분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 팬들의 함성이 멎었다. 오클랜드 시티(뉴질랜드) 수비수가 오른쪽에서 올라온 코너킥을 헤더로 연결하며 골망을 흔들었다. 남미 명문 구단을 침묵시킨 주인공은 뉴질랜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온 수습교사 크리스티안 그레이다.
오클랜드 시티는 25일(한국시간) 미국 내슈빌 지오디스 파크에서 열린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B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보카 주니어스를 상대로 1대 1 무승부를 일궈냈다. 축구가 본업이 아닌 선수들이 세계 강호들 무대에서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동점골을 터뜨린 그레이를 기다리는 건 한 달간 쌓인 학생들의 과제다. 그레이는 오클랜드 마운트 로스킬의 한 중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친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연차를 써야만 했다. 그는 경기 후 “나는 이런 환경과 다른 작은 마을에서 왔다. 그래서 꿈만 같다”며 “여기서 느낀 순간들을 학생들에게 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보험 중개사, 영업사원, 부동산 중개인, 배달부 등 생업으로 바쁜 이들은 퇴근 후에 모여 호흡을 맞춰왔다. 주급은 약 12만원이다. 대회 초 오세아니아 대표로 나선 이들은 ‘숫자만 채우는 팀’으로 여겨졌다. 호주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이 되고 뉴질랜드 프로 구단들도 호주 A리그에 참가하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세계의 벽은 높았다.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첫 경기에선 0대 10으로, 벤피카(포르투갈)와의 경기에서도 0대 6으로 완패했다. 이날 경기도 보카 주니어스가 슈팅 40개를 기록하며 일방적인 공격을 펼쳤다. 여기에 굴하지 않은 오클랜드 시티가 두 개의 유효 슈팅 중 한 개를 동점골로 연결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폴 포사 오클랜드 시티 감독은 “확률로 설명하기 시작하면 안 된다. 우리는 가장 큰 열정을 가진, 가장 작은 클럽”이라며 “오늘 경기에서 얻은 건 무대 뒤에서 일해온 모든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