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대] 응급의료 사각지대 기장군…이젠 병원을 키워야 할 때

입력 2025-06-25 17:10

기장군은 더 이상 외곽이 아니다. 부산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지역이자, 인구 18만명을 넘긴 ‘신도시급 도시’다. 정관·일광신도시가 들어서며 젊은 가족들이 대거 유입됐고, 출산율도 부산 평균을 웃돈다. 그런데 의료 인프라는 여전히 2010년 인구 9만명 시절에 머물러 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해운대나 양산으로 가야 한다. 이 정도면 낙후가 아니라 방치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기장군을 ‘의료 이용 특성 취약지’로 지정했다. 인구 대비 의료기관과 병상이 턱없이 부족하고, 주민 상당수가 적기에 진료를 받지 못한 채 관외로 유출된다는 분석이다. 현장의 우려가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실제로 기장소방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응급환자 이송 건수 중 42%가 관외로 이송됐다. 심정지나 뇌출혈처럼 골든타임이 생명을 좌우하는 중증 환자의 경우, 65%가 기장군 내에서 치료받지 못했다.

기장군에는 상급종합병원이 없다. 종합병원도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단 한 곳뿐이다. 암 진료 중심으로 설립된 이 병원은 지역 수요에 맞춰 소아청소년과, 심뇌혈관센터 등을 확충해 왔지만, 500병상 규모로 감당하기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진료 대기, 주차 불만, 응급 대응의 공백까지 환자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병원을 탓할 수는 없다. 인력도, 장비도, 공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구조 전환으로 병상 감축이 이뤄진 가운데, 이제는 지역 종합병원이 필수 의료를 떠받치는 중심축이 됐다. 이창훈 동남권원자력의학원장은 “24시간 응급 진료를 위해 인력과 시설을 갖추고 싶어도, 현재 구조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병원을 ‘키우는 것’ 외에 답은 없다.

의료는 속도가 생명이다. 구급차가 아무리 빨라도 병상이 없으면 환자는 수술실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 기장군은 인구만 놓고 보면 웬만한 중소도시에 버금간다. 하지만 의료 인프라는 여전히 군 단위에 머물러 있다. 지금도 병상 부족은 심각한데, 2027년 중입자치료센터가 본격 가동되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장군의회는 지난 4월 보건복지부와 부산시에 병상 확충을 공식 건의했다. 이제는 정치권도 이 문제를 공약이 아닌 정책 과제로 다뤄야 한다. 공공의료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닿게 하는 것이다. 병상이 있어야 시민이 안심할 수 있다. 병원을 키우는 일이 곧,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