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최초의 교회이자 전주서문교회의 전신인 ‘은송리 예배당’의 정확한 위치를 둘러싼 수십 년간의 논쟁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그동안 동완산동과 서완산동 등 두 곳으로 추정되던 예배당 위치에 대해 전주시 완산구 명륜맨션 인근 언덕이 유력하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면서 학계와 지역 교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주시기독교연합회(회장 송시웅 목사)는 24일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에서 ‘호남 최초 교회터 고증을 위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서 김경미 전주대 관광외식서비스학과 겸임교수는 “명륜맨션 부지가 은송리 예배당 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완산도형에 구현된 초기 개신교 전주 스테이션 공간 연구’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고종 11년(1874년) 당시 전라북도 관찰사였던 이완용이 왕에게 올린 어람용 지도 ‘완산도형’을 중심으로 고증을 펼쳤다. 이 지도는 당시 완산 일대의 지형과 건물 배치를 상세히 기록한 자료로 은송리 예배당 위치 고증에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김 교수는 완산도형에 기록된 전주 선교지부 건물 8채 중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초가 한 채를 주목했다. 김 교수는 이 집이 당시 선교사들과 더불어 은송리 교회의 주인이었던 정해원이 거주하고 예배 처소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대 위성 지도와 항공사진, 선교사 일기 등 다양한 자료와의 교차 분석을 통해 ‘명륜맨션 부지’가 바로 그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은송리 예배당의 위치에 대해 두 가지 학설이 존재했다. 하나는 동완산동 행운슈퍼 옆 공터, 다른 하나는 서완산동 좋은교회 옆 밭으로 이는 초창기 서문교회 신자들의 증언과 구한말의 지형·지리적 요소를 바탕으로 추정된 곳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의 이번 연구는 조선 정부 문헌과 선교사 문헌을 결합해 실증적으로 도출된 첫 사례로 평가되며 역사적 신빙성과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김석호 목사(전주서문교회)의 사회로 이재근 광신대학교(교회사) 교수가 주제 발제를 했다. 이 교수는 “은송리 예배당은 선교사가 아닌 조선인 정해원에 의해 자생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한국 개신교 전파사에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며 “이번 고증은 단순한 위치 추정을 넘어 초기 선교 역사 자체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기독교연합회 회장 송시웅 목사는 환영사에서 “전주 복음화 140년 여정 속에 묻혀 있던 초기 교회의 실체를 다시 들여다보는 뜻깊은 시간”이라며 “복음의 유산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이 작업이 다음세대와 한국교회를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경미 교수는 “은송리 예배당의 고증은 단지 위치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며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이 풍부한 전주시의 역사 자원들과 연결할 때 전주의 정체성과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함께 드러낼 수 있다”고 밝혔다.
전주시기독교연합회는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은송리 예배당 터의 보존과 복원, 기념비 건립 등 구체적인 후속 사업을 계획 중이다.
전주=김혁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