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시 반려동물 입소 가능한 대피소 만들어야” [개st상식]

입력 2025-06-2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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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경북 안동에서 산불로 전소된 주택 주변으로 강아지가 서성이고 있다. 연합뉴스

올봄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산불로 2000마리에 달하는 반려동물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산불, 지진, 태풍 등 재난 상황에서 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할 매뉴얼이 부재한 탓입니다. 유사한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재난 시 동물 구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4일 ‘동물구호체계 현황과 입법·정책적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현행 재난관리체계는 동물 대피·보호에 대한 법적 기준이 미비하여 현장 대응에 한계가 분명하다”며 “관련 계획과 법령에 동물구호를 포함하여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례로 현행법상 반려동물은 재난 상황에서 대피소 출입이 금지됩니다. 보호자는 반려동물을 동반하지 못하므로 반려동물을 두고 대피소에 들어가거나 아예 대피소 입소를 포기해야 하죠. 실제 3월 영남 산불 현장에서는 주인이 전봇대에 묶어놓고 간 개, 대피소 인근 민가에 홀로 묶인 개 등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현행법상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은 대피소 출입이 금지됩니다. 지난 3월 영남 대형산불 당시 현장에서는 다수의 방치된 개들이 발견돼 동물단체가 구조했습니다. 동물구조단체 위액트 제공

지난 3월 영남 산불 당시 쇠줄에 묶인 채 홀로 남겨진 개 모습. 동물구조단체 위액트는 당시 산불 현장에 출동해 다수의 방치된 동물을 구조하고 가족에게 인계했다고 밝혔다. 동물단체 위액트 제공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재난 대피소 지침’에 따르면 안내견 등 봉사용 동물을 제외한 반려동물은 대피소 출입이 제한됩니다. 반면 동물보호법에서는 ‘소유자는 재난 발생시 동물이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대피소 운영 원칙과 충돌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정한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도 반려인들에게 반려동물과 동반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미리 파악하도록 권고합니다. 대피소 운영 방침과는 정반대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법조사처는 “이러한 제도적 공백은 반려동물의 상해, 사망 등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소, 돼지, 염소, 닭, 오리 등 가축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재난에 대비한 대피 방법, 보호시설, 대응 절차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죠. 산불로 인한 가축 피해는 2023년 6만8000여마리, 올해의 경우는 5월까지 5만4000마리로 집계됐습니다. 다친 가축을 치료하기 위해 민간 수의사 단체, 동물단체 등이 긴급 봉사활동에 나서고, 정부는 현장에 동물의약품을 공급하는 등 긴급조치를 실시하지만 임시대응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해외에서는 재난으로 인해 동물 피해를 경험한 뒤 대응책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계기로 이듬해인 2006년 ‘반려동물 대피 및 수송법’을 제정했습니다. 반려동물의 구조·보호 실시 및 피난처·구호품 제공의 법적 근거를 명시한 법입니다. 또 지방정부가 반려동물 대피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재난구호 기금 지원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대책을 강제합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2018년 ‘사람과 반려동물의 재해대책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는데요. 동물의 케이지 수용 및 공간분리를 전제로 대피소 입소를 권장하는 등 보호자와 반려동물의 ‘동행피난’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덧붙여 입법조사처는 재난 시 동물 수용이 가능한 인프라 구축과 구호물자 비축을 제안합니다. 지정 대피소에 사료, 목줄, 이동장 등 필수물품을 비축하고, 임시 보호공간과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방식입니다. 가축에 대해서는 재난 시 일정 수의 가축을 임시로 대피시킬 수 있는 방목지를 확보하고 사후 시설복구와 사료지원 등이 신속히 이뤄지도록 인력과 자원의 운용 기반을 마련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이를 위해 동물보호법상에 ‘재난시 구조·보호가 필요한 동물’ 관련 조항을 신설해 지자체에 구조·이송·임시보호 등 의무를 부과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할 것도 함께 권고했습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