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H는 지난번 중간고사를 망치고 무기력에 빠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생각에 빠져 있다. 그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시험을 왜 못 봤을까? 무엇이 잘못되었나?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왜 이럴까? 나는 늘 이렇다. 지난번 시험뿐 아니라 이전에도 그랬다. 매사에 다 그렇다.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야. 이런 문제는 왜 생겼을까?’라며 고민의 땅을 파고 들어가니 우울함이 심해진다. 기말고사가 다가오지만 이런 생각에 빠져 있어 준비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할 것이다.
생각은 다시 ‘시험을 망치면 나는 어떻게 되나?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부끄러워서 어쩌나? 부모님도 실망하실 텐데…. 대학도 못 갈 텐데…. 나는 잘하는 게 없는 한심한 사람이야. 다들 나를 떠날 텐데 어떻게 하나…. 나는 결함이 있는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니 불안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지난간 과거의 일이나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결론은 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하고, 결국 ‘나는 문제가 있어, 나는 결함이 있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면서도 H는 왜 ‘생각에 빠져드는’ 걸 반복하는 걸까? H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황이 안 좋을 때 이렇게 생각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비정상적인 건 아니다. 당연히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원인을 찾아야 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픈 곳이 있으면 먼저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다’는 식의 문제 해결의 논리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사실 이런 문제 해결 식의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인류는 과학과 문명을 발전시켜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고는 마음의 문제에선 딱히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반복되는 사고 활동(반추)’을 하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통제감을 주기’ 때문에 인간은 쳇바퀴를 계속 돌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반추는 생각이 아니라 활동 즉 행위로 정의된다는 점이다.
생각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행위는 통제할 수 있다. 마음속에 들어오는 부정적인 생각, 끔찍한 생각, 파국적인 생각을 안 하려고 할수록 더욱 깊이 파고들지만, 팔을 들어 올리거나 공을 발로 차는 행위는 마음을 먹으면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생각의 쳇바퀴를 돌리는 행동(반추)’은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 물론 반복되는 연습이 필요하다.
먼저 집중하는 대상을 조금 바꾸어 행위의 방향을 조금 틀어줘 본다. ‘숨 쉬는 것에 집중해 본다든가, 발바닥의 느낌에 주의를 돌려 보고, 주변에 보이는 물체에 관심을 기울여 본다’든가 하는 식이다. 결과는 그동안 미처 접촉할 수 없던 자극들과 만나는 것이다. 방향이 틀어지는 것이다. 조금씩 통제감을 얻어 간다. 주의할 것은 이때 생각의 내용을 바꾸려 한다든가, 생각의 내용을 없애려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과 싸우는 것은 무모하게 거대한 괴물과 싸우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단지 관심의 물꼬 방향을 바꾸어 주고 쳇바퀴를 돌리는 행위를 멈출지 말지를 결정할 일이다. 발로 공을 차는 행위도 부단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듯이 방향을 바꾸는 행위도 부단히 반복되는 연습을 해야 선수가 될 수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녀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