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놓은 세대 간의 단절된 다리 앞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기성세대와 성장 사다리를 잃은 청년들을 연결할 유일한 해답으로 교회가 지목됐다. 정답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학교와 직장에서는 불가능한 ‘진짜 소통’을 통해 다음세대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에서 ㈔미셔널신학연구소(이사장 송태근 목사) 주최로 열린 ‘AI 시대의 다음세대 교육: 본질을 붙잡다’ 세미나에선 이같은 제언이 나왔다. 강연에 앞서 인사말을 전한 송태근 이사장은 “AI가 다음 세대에 악이 될 것인가 선이 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우리의 준비에 달려있다”며 교회의 책임 있는 역할을 강조했다.
이날 강사로 나선 전소영 박사(에듀테크 기업 ‘클라썸’ 학습과학 책임자)는 AI가 촉발한 세대 간 기회 불균형을 지적하며, 교회가 이 시대의 대안적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서울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인적자원개발(HRD) 분야 전문가로서 대기업 학습과학 책임자를 거친 AI와 교육 전문가다.
‘다 가진 세대’와 ‘박탈된 세대’의 공존
전 박사는 먼저 AI 시대가 만든 역설적인 세대 구분을 제시했다. 1980년대 이전에 태어난 기성세대는 아날로그부터 디지털까지 점진적인 기술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땅에 발 딛는 경험을 축적했다.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그는 “특정 영역에서 오래된 경험을 다 가진 세대는 AI 덕분에 커리어적으로 생명 연장의 시대가 열렸다”며 이들을 ‘다 가진 세대’로 정의했다.
반면, 지금의 청년과 청소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SNS로 전 세계인과 비교당하며 자존감을 위협받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온실 속 화초같은 환경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헤쳐나갈 기회를 잃었다. 여기에 AI가 신입사원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이들은 경력을 쌓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자체가 사라진 세대”가 됐다는 게 전 박사의 진단이다.
‘나는 누구인가’ “정교화에서 답을 찾아야”
이러한 노동 시장의 변화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소환한다. 전 박사는 “일에서 정체성을 찾아온 우리에게 시간이 갑자기 주어지면 어떻게 될까”라고 물으며, “한국의 20대는 놀기 위해 돈을 내고 커뮤니티에 가고, 노는 법도 배워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꼬집었다.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핵심 열쇠로 학습과학 개념인 ‘정교화(Elaboration)’를 제시했다. 그는 “단순 정보를 암기하는 건 AI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영역”이라면서도 “AI에겐 없지만 인간 고유의 강점인 정교화 능력이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교화란, 습득한 정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이다.
전 박사는 정교화 과정을 통해 ‘나는 나의 사용법을 알고 있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계도 매뉴얼이 있는데, 정작 우리는 자신이 어떤 때 에너지가 채워지고 소진되는지 모른 채 번아웃을 맞는다”며, 스스로를 데이터로 관찰하며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용기는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내가 아는 영역의 경계선 밖으로 침 두 번 삼키고 반 발짝 밟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없던 일이 계속 생겨나는 AI 시대에는 시장이 요구하는 능력을 100% 갖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모두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출발선에 서 있기에, 부족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본질을 질문할 유일한 공동체, 교회의 과제
전 박사는 “객관식 정답과 서열을 매기는 학교, 성과와 효율을 추구하는 직장에서는 결코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전제했다. 정해진 답이 없는 삶의 문제와 인간의 정체성, 그리고 AI가 촉발한 상실의 시대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가 던져진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할 곳이, 나눔 공동체가 교회밖에 없습니다” 전 박사는 강의 말미에 이런 말을 던졌다. 동시에 교회의 현실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경험을 가진 세대와 경험이 필요한 세대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지금 한국교회는 나이를 기준으로 예배와 교제를 나누고 있다”며 교회의 구조적 한계가 오히려 시대적 과제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