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80년, 한 세기의 절반을 넘긴 이 시간 동안 한국교회의 통일 염원은 단순한 기도를 넘어 실천적이고 체계적인 준비로 전환되고 있다. 북한선교 전문 인력 양성부터 탈북민 인문학 교육, 미래세대를 위한 양육 시스템 구축, 전국적인 기도 연대까지 ‘그날’을 향한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30년 북한선교 전초기지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고양 일산광림교회(박동찬 목사) 벧엘성전은 북한을 향한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청년부터 장년, 그리고 청소년까지 70여명의 성도가 함께한 ‘북한선교전략학교’ 개강예배 현장이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중·고등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였다.
손예진(16)양은 “예전엔 통일 강의가 어려웠지만 이번엔 집중해서 배우고 싶다”는 배움의 의지를, 조은혜(16)양은 “북한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배우고 싶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메시지를 전한 박동찬 일산광림교회 목사는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를 통해 남북관계를 풀어냈다. 그는 “탕자 이야기에서 아버지가 집 나간 동생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것처럼 하나님은 북한을 향해 마음 아파하고 계실 것”이라며 북한 사역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4주 과정으로 진행되는 전략학교는 오는 10월 북한 접경지역을 방문하는 필드 트립도 예정되어 있어 이론과 현장을 겸비한 전문 인력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산광림교회는 1995년 설립 초기부터 ‘북한선교 전초 기지’를 목표로 삼고 ‘북방선교회’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 등 북방권 선교를 추진했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교회는 최근 탈북민 10명 구출이라는 값진 결실을 보았으며 앞으로 100명 구출을 목표로 사역을 확대하고 있다.
‘김일성 일가 찬양’ 획일화된 사고에서 벗어나
서울 강남비전교회(한재욱 목사)가 진행하는 탈북민 목회자 인문학 공부는 통일 준비의 또 다른 차원을 열어가고 있다. 한재욱 목사가 이끄는 이 모임에는 현재 8명의 탈북 목회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읽고 토론한다.
한 목사는 2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북한에서의 문학은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는 시와 글에 머물고, 역사는 김일성 가문의 발자취를 배우는 것이며, 철학은 곧 주체사상을 학습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획일화된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인문학의 첫 번째 효과”라고 강조했다.
인문학의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바로 공감 능력의 확장이다. 오랜 시간 하나의 가치만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살아온 탈북민은 인문학을 통해 다양한 관점과 자유로운 사유를 경험하게 되면서 남한 사회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남한의 생각과 감정을 공감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또 한 목사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탈북 목회자들이 공감력 확장 뿐 아니라 문학 속 인물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보편적 인간 경험을 발견하고 고독감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그동안 아팠던 과거가 의미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되어 이제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고유한 서사가 된다”고 설명했다.
한 목사는 “탈북 목회자들의 교회 벽면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걸려 있고 빨간 점으로 자신의 고향이 표시되어 있다”며 “그들은 ‘주님이 허락하시면 이곳에 다시 가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회복을 넘어 영적인 고향 회복을 꿈꾸는 탈북 목회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보여준다.
어린이 양육부터 시작하는 통일 준비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대표 서정인 목사)의 북한 사역은 어린이부터 시작하는 통일 준비의 전형을 보여준다. 2013년 시작된 이 사역에는 현재 200개 한국교회가 파트너십을 맺고 참여 중이다. 한국컴패션은 북한이 열리는 날 즉시 어린이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전인적 양육 교재 개발을 완료했다. 지적·신체적·사회정서적·영적 4개 영역에서 총 48권의 교재(어린이용 24권, 교사용 24권)를 통해 3세부터 11세까지 단계별 양육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역 초기부터 참여하고 있는 조광훈 전주팔복교회 목사는 “북한에 대한 영적 부담감과 책임감이 늘 있었는데 컴패션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을 때 ‘이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북한의 한 지역을 맡아서 센터를 세우고 아이들을 복음으로 훈련해 소망의 세대로 키우는 계획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고백했다.
조 목사는 북한 사역을 구체화하기 위해 다양한 실천 방안을 마련했다. 탈북민들을 개인적으로 찾아 돌보는 사역을 하고, 휴전선 부근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순례를 연 2회 진행한다. 6·25 주간에는 ‘북한사역 주간’으로 정해 모든 예배와 소그룹에서 북한 관련 말씀을 나누며 성도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조 목사는 “전인적 양육은 단순한 구호 지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아이가 전인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면 그 영향이 가정과 지역사회로 퍼져나간다”며 “어떤 물질보다 인성과 영혼이 건강하게 잘 자란 아이가 가장 큰 자원이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비췄다.
한국컴패션 파트너교회들은 어린이센터 운영에 필요한 인력과 재정, 시설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교회당 평균 2.5개 어린이센터 설립을 목표로 하며, 센터당 200명의 북한 어린이를 양육할 계획이다.
기도로 이어지는 교회들의 연대
통일 한국을 향한 간절한 소망은 기도로 이어져 전국 교회들의 연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대표회장 오정현 목사)는 사랑의교회가 2004년부터 시작해 교단을 초월해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다. 사랑의교회 대학부와 통일사역단체 부흥한국이 연합해 7년간 진행했던 기도회는 33개 단체가 참여하며 전국으로 확산했다. 사랑의교회로 시작했지만 현재 84개 단체가 연합해 국내외 53개 지역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는 2014년부터 청소년과 다음세대를 위한 주니어쥬빌리를 진행해왔다. 매년 여름 수련회 형식으로 ‘주니어쥬빌리 청소년 통일캠프’를 진행하며 중·고등학생들에게 예배훈련과 통일 교육을 해왔다. 400여명이 참여하는 올해 행사는 오는 8월 4일부터 ‘미션 컴플리트’를 주제로 개최된다. 이 캠프는 다음세대가 통일 세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쥬빌리구국기도회 사무총장 오성훈 목사는 “청소년들이 단순히 통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통일 의식과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김아영 기자, 박윤서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