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대신 기부 택한 10살’···돼지 저금통에 담은 사랑 [아살세]

입력 2025-06-24 14:20 수정 2025-06-24 14:27
전두호군이 황금색 저금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정혜림씨 제공

“엄마, 저는 에어컨은 못 사니까 선풍기로 기부하면 안 돼요?”

지난해 6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전두호(10)군은 1년간 황금색 돼지저금통에 열심히 모은 돈을 어디다 쓸지 고민하고 있었다. 전군의 마음을 기부로 이끈 건 우연히 본 유튜브 릴스. 한 자영업자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에어컨을 기부하는 짧은 영상을 보고 전군의 마음이 동했다. 전군의 어머니 정혜림씨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나흘을 고민하더니 갑자기 기부를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황금색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가르자 나온 돈은 약 50만원. 지난 1년간 명절·생일 등 특별한 날마다 받은 용돈을 고스란히 모았지만, 에어컨 한 대를 사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나도 에어컨처럼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걸 선물하고 싶은데….’ 전군은 문득 선풍기가 떠올랐다고 한다. 어머니와 함께 선풍기 10대를 구입한 전군은 집 근처 강원 동해시 북삼동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가 폭염 취약가구에 기부했다.

전군은 “자랑스럽다”, “멋지다”는 가족과 친구들의 칭찬에 어깨가 올라갔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줬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몰려왔다. 한 번 기부를 해보니 두 번째는 쉬웠다. 정씨는 “작년에 한 번 해봤다고 올해는 좀 더 적극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하더라”고 전했다.

올해는 “오빠가 하는 거면 나도 같이 하고 싶다”는 여동생 혜리(7)양도 합세했다. 그렇게 남매는 세뱃돈과 용돈을 저금통에 채워나갔다.

지난 1년간 남매의 투명한 형광색 저금통 두 개는 용돈으로 차곡차곡 채워져 갔다. 두 개의 저금통에 채워진 용돈은 총 65만원. 남매는 올해도 북삼동행정복지센터에 10㎏짜리 백미 20포를 기부했다. 올해는 왜 쌀을 골랐냐는 질문에 전군은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식(食)’이라고 배웠다”고 말했다.

전군도 좋아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한때 레고 조립에 푹 빠져 레고 대여점을 밥 먹듯 드나들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레고에 대한 호기심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전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실제로 전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교내 ‘도움반’ 친구들을 챙기고 있다.

전혜리양이 올해 오빠와 함께 용돈을 모았던 투명한 형광색 돼지 저금통과 함께 웃고 있다. 정혜림씨 제공

부모에게서 도움의 가치를 따로 배운 걸까. 정씨는 “어릴 적부터 유튜브를 보다가 누군가 선행을 베푸는 영상이 나오면 꼭 ‘두호야 이리 와 봐’ 하고 불러서 같이 보곤 했다”고 말했다. 아들이 여섯 살이던 시절엔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밖에 나가 쓰레기를 줍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기특한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에게도 배움이 된다. 정씨는 “아이들 덕분에 저도 말도 더 곱게 하려고 노력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조심하는 게 많아졌다”고 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