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고아 돕다 순직…캐나다 간호사 2人 이야기

입력 2025-06-24 15:30 수정 2025-06-24 15:30
캐나다 간호 선교사인 캐서린 딕(사진 위쪽 흰 원)이 1955년 부산 일신병원에서 열린 쌍둥이 잔치에서 참가자와 함께 미소짓고 있다. 이상규 교수 제공

부산서 6·25전쟁 고아와 빈곤 가정을 지원하다 30대에 순직한 두 간호 선교사의 잊혀진 이야기가 70년의 세월을 넘어 최근 알려졌다.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파송으로 영양실조 위기에 놓인 부산 지역 고아와 산모를 돌본 간호 선교사 버사 코넬슨(Bertha Kornelson·1918~1956)과 캐서린 딕(Katherine Dyck·1925~1956)이 그 주인공이다. 캐나다 병원서 근무하다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한국에 온 이들은 해운대 바위에서 휴식하다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30대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가 1953년 세운 메노나이트실업중고등학교(MVS) 간판. MCC는 극빈자에게 교리보다 실용 교육이 중요하다 여겼기에 교회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대장간 제공

MCC는 기독교 소수 교파인 메노나이트가 국제 구호를 위해 1920년 설립한 비영리기구다. 6·25전쟁 발발을 계기로 한국 구호를 시작한 MCC는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고아와 과부, 극빈자를 위한 구호와 교육 사업을 주로 펼쳤다. 한국 경제가 점차 발전하자 대구 계명대에 모든 자산을 기부한 뒤 71년 철수했다. 95년부터는 북한에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캐나다 간호 선교사 버사 코넬슨이 옷 등 구호품 분배를 준비하는 모습. 메노나이트 기록보관소

MCC는 1955~64년 미국과 캐나다 출신 간호사 21명을 전국 병원에 파송해 보육원과 빈민촌 방문 진료, 위생 교육 등을 진행했다. 코넬슨과 딕 역시 이 기간 부산에 도착해 각각 병원에 배치됐다.

메노나이트 기록보관소(MAID)에 따르면 코넬슨은 위니펙의 메노나이트 브레드런 성경대학에서 2년간 수학 후 밴쿠버의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수련을 받았다. 이후 애버츠퍼드와 밴쿠버의 종합병원에서 6년간 간호사로 근무하다 55년 내한, 부산아동자선병원서 4세 이하의 고아를 돌봤다.

캐나다 간호 선교사 캐서린 딕(사진 맨 오른쪽)이 1954년 시립건강아동관리소(Well Baby Clinic) 앞에서 기관을 심사한 국내 의료인과 함께 찍은 사진. 메노나이트 기록보관소

1953년 10월 부산에 온 딕 역시 위니펙 메노나이트 성경대학에서 1년 수학 후 서스캐처원주 퀼레이크연합병원 등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부산에선 시립건강아동관리소(Well Baby Clinic)와 일신병원 산부인과와 소아병동 등에서 산모와 아동을 돌봤다.

우유 보급소 일도 맡았던 그는 빈곤 가정에 우유를 정기적으로 공급했는데 이때를 회고한 내용이 메노나이트 정기 발행물인 ‘더 메노나이트’ 56년 1월 24일자에 실렸다. “많은 아이가 엄마에게 버려지는 듯합니다.… 한편 이런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키우는 엄마들도 봅니다. 자기 자녀를 키우기에도 충분치 않은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두 간호 선교사의 추모예배가 열린 부산의 한 장로교회에 이들을 추모하는 수많은 화환이 답지했다. 코넬슨의 묘비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좌). 현재 코넬슨의 묘비는 대구 계명대 경내에 있다. 메노나이트 기록보관소, 대장간 제공

두 사람의 추모예배는 56년 8월 9일 부산의 한 장로교회에서 열렸다. 딕의 시신은 캐나다로 옮겨져 안장됐다. 코넬슨은 평소 “한국서 죽는다면 그 땅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부산에 묻혔다. ‘일생을 봉사 사업에 헌신함’이라고 적힌 그의 묘비는 현재 계명대에 있다.

두 간호 선교사의 부고(사진 아래 흰 네모)가 실린 캐나다 메노나이트 신문 이미지. Damien Shon 제공

이들의 이야기는 교회사학자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더 급한 곳으로 가라’(대장간)에 소개됐다. 책에는 추모예배 당시 배상갑 당시 부산시장이 전한 조사(弔詞)도 일부 기록됐다. 그는 “백만 부산 시민을 대표해 주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주실 것을 진심으로 기도하고 선한 씨앗이 후일 한국 역사에 수천 배 결실을 가져올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저자 이상규 교수는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6·25전쟁으로 발생한 고아는 10만명, 과부는 30만명에 달했다. 이들을 위해 한국서 구호사업을 한 MCC 구성원의 봉사를 한국교회가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밝혔다. 이어 “교파를 소개할 의도가 없어 교회 하나 세우지 않고, 오직 고통당하는 이들을 도우려 한국에 온 이들”이라며 “숭고한 정신으로 인류애를 실천한 이들을 잊지 말자”고 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