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화약고’ 호르무즈 해협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B-2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해 이란 영토 내 핵시설 3곳을 전격 타격하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원유 70%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하는 한국으로서도 해상수송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최악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도대체 호르무즈 해협이 뭐길래 이란발 불안정성이 불거질 때마다 언급되는 것일까.
이란 의회는 전날 미국 공습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기로 22일(현지시간) 의결했다. 실제 봉쇄 여부는 마수드 페제시안 이란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는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달렸다. 다만 실질적인 결정권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손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메네이는 23일 X에 “시온주의 적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고,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세계 원유 소비량 25% 지나는 ‘오일 하이웨이’
중동 지역, 특히 이란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면 늘 주목을 받는 곳이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곳은 하루에도 대형 유조선 수십 척이 2000만 배럴 가까운 원유를 실어 날라서 이른바 ‘오일 하이웨이’로도 불린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서 생산된 원유가 한국으로 가는 길목이라 국내에도 익숙한 지명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사이에 있는데, 이란과 오만이 각각 절반씩 통제 중이다. 이 해협에서 가장 좁은 부분은 21해리(약 39km)인데, 이란과 오만 양국이 각각 12해리를 영해로 선포했다.
특히 대형 유조선이 오고 가기엔 폭도 좁고, 수심도 얕다는 점이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의 ‘꽃놀이 패’로 만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해로는 들어오는 쪽 3.2km, 나가는 쪽 3.2km,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중앙 여유 지대 3.2km로 이뤄져 있다. 선박 간 충돌을 차단하기 위해 들어오는 배와 나가는 배를 분리하는 시스템(TSS)도 설치돼 있다. 일종의 차로인 셈이다.
통상 대형 유조선의 경우 선체가 20∼25m 잠길 수심이 필요한데, 호르무즈 해협은 수심도 얕아 크기가 큰 유조선이 항해할 수 있는 구역은 해협 일부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란이 자신의 영해를 막을 경우 유조선들이 해협 서쪽에선 이란 영해 아래쪽 바다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이용 가능한 항로가 좁은데, 상황이 더 악화하는 것이다. 이란이 군사적인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사회 시선을 우려해 해협을 봉쇄하는 대신 마약이나 불법무기 운반 수색 등을 빌미로 유조선 검열에 나서도 병목현상을 초래해 원유 수급에 적잖은 타격을 줄 수 있다.
봉쇄 시 중동서 원유 70% 이상 수입하는 한국에 타격
만약 이란이 어떤 조치든 취하면 원유 70% 이상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이라크, UAE 등 중동에서 수입하는 우리로서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호르무즈해협 외 예멘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바브알만다브해협을 활용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일부를 들여올 수도 있다. 다만 사용빈도가 낮고 해적 출몰이 잦다는 부담이 있다.
현재 정부와 정유업계는 약 200일간 사용 가능한 비축유와 법정 비축 의무량을 초과하는 액화천연가스(LNG) 재고를 갖추고 있다.
실제로 봉쇄한 적 없지만 가능성 예의주시해야
전문가들은 이란이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란이 2019년 9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타국 선박을 나포한 적은 있어도 봉쇄한 사례는 없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미국이 받을 타격은 거의 없다”며 “미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전체 소비량의 2%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해협을 닫으면 한국과 중국, 일본이 특히 타격을 받는데 이렇게 되면 한·중·일 3국이 국제사회에서 이란에 우호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 없다”며 “이란 정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대신 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나포하거나 중동 지역 내 미군 기지를 대상으로 보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된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