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청 피워도 괜찮아” 지친 직장인 위한 힐링 음악회

입력 2025-06-23 13:24
클래식 앙상블 팀 클라시스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충현교회에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충현교회 '이웃과 함께하는 앞마당음악회'에 참석한 직장인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다.

최고 기온이 섭씨 34도까지 오른 지난 19일, 정오가 넘자 서울 충현교회(한규삼 목사) 카페엔 주일 만큼 많은 손님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교인으로 보이는 손님은 거의 없어 보였다. 대다수는 서울 강남구 역삼역 일대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이었다. 이들의 화기애애한 담소가 오가는 카페 너머 문 하나로 이어진 교회 로비에선 그보다 더 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교회 로비에선 지쳐 있는 직장인들을 위한 점심시간 음악회가 열렸다. ‘이웃과 함께 하는 앞마당 음악회’를 주제로 열린 작은 무대엔 클래식 앙상블 팀 클라시스의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플루트 연주자들이 나서 모차르트의 ‘아이네클라이네 나흐트뮤직’와 베토벤의 ‘이히리베디히’ 등 곡명은 쉽게 떠오르지 않아도 귀엔 익숙한 유명 클래식 8곡을 선보였다.

'이웃과 함께하는 앞마당음악회'에서 휴식을 취하며 클래식 음악을 감상 중인 직장인들.

약 40분간 이어진 음악회 분위기는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 현장과 다소 달라 보였다. 눈을 감은 채 선율에 맞춰 귀를 집중하는 관객들도 있는 반면,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거나 동료와 소곤소곤 담소를 나누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다. 교회 로비 귀퉁이 기둥에 몸을 기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넘겨보거나, 무음으로 유튜브 쇼츠를 보면서 클래식을 동시에 즐기는 이들까지 현장엔 저마다의 쉼을 찾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어우러졌다. 클래식 무대를 앞에 두고 딴청을 피우는 듯 보여도 어느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교회 일대 직장인들을 위한 힐링 음악회는 2022년 4월 처음 시작됐고, 강남구청과 협력해 한여름과 겨울철을 피해 매년 10회 안팎으로 열리고 있다. 역삼역 인근 IT기업에서 일하는 김진태(가명·48)씨는 “교회 카페에 왔다가 악기 소리가 나길래 우연히 음악회에 왔다”며 “클래식은 잘 모르는데 막상 듣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고, 음악에 몰입하지 않아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혜슬(30)씨는 “점심시간에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빡빡한 일상 속 여유를 찾은 것 같아 좋다. 현장감 있는 연주와 관객들의 박수 호응에 덩달아 에너지가 생긴다”며 반색했다. 충현교회 찬양위원장인 김상열 장로는 “이웃과 함께하는 앞마당 음악회는 청중들을 위한 고정 좌석이 있는 음악회와는 달리 점심시간 휴식을 취하면서 음악을 감상하는 일종의 버스킹”이라고 소개했다.

서울 정동제일교회 '정동월요정오음악회' 참석자들이 지난 9일 음악회가 끝난 뒤 손으로 하트를 만들고 있다. 정동제일교회 제공

직장인을 위한 도심 속 음악회는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도 열리고 있다. 서울 정동제일교회(천영태 목사)는 2014년부터 ‘정동월요정오음악회’를 열고 있다. 매년 봄 가을마다 10~12회에 걸쳐 열리는 이 음악회는 월요일 정오에 약 1시간 동안 진행된다. 교회는 올해 창립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또 다시 정동,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란 제하로 음악회를 이어가고 있다.

정오음악회엔 공연마다 직장인 20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다. 행사 실무를 총괄하는 음악위원장 박은혜 권사는 “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며 “바쁜 일상 속 직장인들이 음악을 통해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얻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 연동교회가 지난 4월 연 '새참음악회' 현장.

이밖에 서울 연동교회(김주용 목사)는 매년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새참 음악회’를 열고 있다. 점심시간에 열리는 음악회엔 샌드위치와 음료가 함께 제공되고, 참석하는 직장인은 평균 50명 안팎이다. 서울 종교교회(전창희 목사)는 오는 27일 ‘한낮의 클래식 산책’이란 주제로 이웃 초청 정오 연주회를 연다. 오르가니스트 진미영이 오르간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