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립문화공간재단 설립, 대표에 블랙리스트 징계받은 전 문체부 관료

입력 2025-06-23 06:00 수정 2025-06-23 08:44
지난 2014년 12월 우상일 당시 문체부 체육국장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우 국장은 비선 실세 정윤회 씨와 관련해 의원들로부터 집중 추궁을 받던 김종 2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고가야’라고 적은 메모를 전달했다가 들통나 논란을 일으켰다.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가 향후 신설되는 국립문화예술시설을 운영·관리할 산하기관 (재) 국립문화공간재단을 설립하고 전직 문체부 관료를 대표로 임명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특히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대표로 임명한 인물이 블랙리스트 문제로 징계받은 우상일 전 문체부 예술국장이어서 문화예술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국립문화공간재단은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 등 향후 신설될 국립문화예술시설의 전문 운영법인으로 문체부가 지난해 12월 설립했다.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 중인 문화역서울284도 여기에 포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 조감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문화공간재단은 앞서 문체부가 2023년 말 발표한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 10대 핵심과제’ 속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와 서계동 국립공연예술센터 등 신설 국립문화예술시설을 통합 운영할 전문운영법인 ‘(가칭)문화예술복합관리센터’ 설립 계획에 따른 것이다. 당초 계획에 포함됐던 서계동 국립공연예술센터의 경우 임대형 민간사업(BTL) 방식으로 이뤄지는 만큼 통합 운영이 쉽지 않아 이번에 국립문화공간재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같은 내용은 문화예술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다가 지난 3월 말 국립문화공간재단이 직원 채용 공고를 내면서 조금씩 드러났다. 그리고 우상일 전 국장이 지난 5월 초 대표로 임명된 것이 최근에야 알려졌다. 실제로 문체부 홈페이지에 있는 비영리법인 현황에는 국립문화공간재단의 대표로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리고 국립문화공간재단은 홈페이지가 있지만 입사 지원서를 접수받는 것 외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문체부에 확인을 요청하자 담당 부서인 시각예술과 관계자는 “(당인리발전소를 리모델링해 2026년 개관하는)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의 공정율이 50% 정도다. 운영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해서 지난해 12월 말 국립문화공간재단을 설립했다. 이사회는 문체부 산하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등의 기관장(대표)들이 당연직 이사를 맡았고, 이사장은 호선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 채용의 경우 비상임 이사장이 진행하기보다 재단 조직을 만들고 운영할 상임 대표이사가 뽑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월 초 재단 정관에 따라 문체부 장관이 (우상일) 대표를 임명했다”고 답했다.

문체부의 비영리법인 현황에 나오는 국립문화공간재단 정보. 월 23일 현재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국립문화공간재단의 설립이 문화예술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진행된 것도 문제지만 우상일 전 국장의 대표 임명은 문체부의 심각한 관료적 권위주의 행태를 보여준다. 우 전 국장은 문체부에 재직할 때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2014년 체육국장 시절 정윤회 씨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공방이 오가던 국회에서 김종 문체부 제2차관에게 “여·야 싸움으로 몰고 가야”라는 메모를 전달했다가 사달을 일으킨 바 있다. 또 2017년 예술국장 시절엔 조윤선 당시 문체부 장관에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보고한 장본인이다. 이는 조 장관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밝힌 것이다.

이후 문체부를 퇴직한 우 전 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지난 2022년 10월 한국관광공사가 대주주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 경영본부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알려지며 다시 한번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GKL 노조는 성명을 통해 반대의 뜻을 밝히며 우 전 국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국정농단 핵심 인사이자 국회 모독의 당사자를 GKL의 중요 직책에 임명한다면 이는 현 정부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활동을 정당화하는 것이고 국회 모독을 묵인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같은 반대 여론 때문에 GKL 주주총회에서 우 전 국장의 경영본부장 선임은 무산됐다. 우 전 국장이 다시 언론에 등장한 것은 2023년 보수 성향 문화예술단체 ‘문화자유행동’ 창립 당시 사무총장을 맡으면서다. 이 단체는 창립 직후 다른 보수 성향 단체들과 함께 유인촌 문체부 장관 후보자 지지 성명을 발표했었다.

국립문화공간재단 홈페이지. 입사 지원서를 접수받는 것 외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문화예술계가 주시할 수밖에 없는 국립문화공간재단 수장으로 우 전 국장의 임명은 파문을 일으킬 게 뻔하다. 이 때문에 문체부는 임명 사실을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문체부 시각예술과 관계자는 “공공기관 대표 임명을 항상 발표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국립문화공간재단은 아직 공공기관도 아니기 때문에 대표 임명에 대해 일일이 보도자료를 낼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앞으로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 운영계획이나 예술감독 등이 결정되면 그때 대표 임명도 발표하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6월 3일 대선 사이의 권력 공백기에 ‘문화한국 2035’로 대표되는 각종 정책을 무리해서 추진하는가 하면 다수의 알박기 인사를 자행했다. 특히 산하기관장 인사와 관련해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관광공사, 국립국악원, 한국영상자료원 등은 여론의 압박에 중단했지만 국가유산진흥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은 임명을 강행했다. 이번에 대선을 한달도 남겨두지 않고 국립문화공간재단 대표로 우상일 전 국장을 임명한 것은 문체부의 관료주의가 위험한 수준에 달했다는 지적이 많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