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국선변호 조력 범위 확대를 제시했다. 형사사건은 수사단계에서부터 국선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민사사건도 소송 구조 결정을 받은 사건에 한해 국선변호를 시범 도입하겠다는 내용이다. 법조계에선 조력 확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존 제도 내실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피해자 국선변호제도는 국선변호 조력 확대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올해부터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의 한 달 사건 수임 건수를 약 16건에서 약 25건으로 늘렸다. 동시에 세전 600만원 수준이었던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의 처우를 재임용 시 최대 800만원까지 인상했지만, 실질적인 1건당 사건 수임료는 낮아진 셈이다.
2012년 도입된 피해자 국선변호 제도는 이 대통령 공약과 마찬가지로 국선 조력의 폭을 확장하는 차원으로 평가받았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열악한 처우와 막대한 업무량은 개선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사건 수는 2020년 2만6007건에서 지난해 3만7605건으로 5년 새 1만건 이상 늘었다. 하지만 지난 5월 기준 전국의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전담 48명, 비전담 573명으로 총 621명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의 사건 수임 수를 늘린 것은 법원 국선전담변호사의 사건 수를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피고인 국선과 피해자 국선의 업무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각 심급 재판만 책임지는 피고인 국선변호사와 달리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수사와 재판 과정 전반을 지원한다. 매달 신규 사건은 늘어나는데 재판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아 동시에 진행하는 사건 수는 계속 늘어나는 구조다. 한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는 “지난해보다 업무 강도가 훨씬 세졌다”며 “사건당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피해자에게 들이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조력 확대에 앞서 현행 국선변호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도윤 인천지법 국선전담변호사는 “국선사건 전반에 동기 부여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국선변호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며 “기존 제도를 보완하면서 절차마다 요구되는 변호인의 역할 등을 면밀히 검토해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준식 양한주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