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혼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던 남자에게 어느 날 연상의 여자가 다가왔다. 그 여자는 남자와 그의 두 아들을 자기 가족처럼 돌보기 시작했다. 10여 년 동안 아내와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을 그리워했던 남자와 아이들은 여자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다. 남자는 너무도 다정한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고, 결국 사실혼관계를 맺었다.
남자는 10여 년 전 농장을 시작하면서 농장 상호를 아이들 이름 한자씩을 따서 지었으나, 여자를 만나면서 남자와 여자의 이름 한자씩을 따서 다시 지었다. 여자가 강력하게 원해서 농장을 공동소유로 바꾸고 사업자도 공동으로 바꿨다. 또한, 사실혼관계에 들어간 이후 취득한 아파트를 포함한 재산 대부분을 여자 명의로 하였다. 남자는 어차피 부부의 연으로 맺어졌으니 누구 명의로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 날, 여자가 갑자기 사라졌다. 남자는 백방으로 여자를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수없이 전화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남자는 살갑던 여자가 사라지자 의욕을 잃고 1년여를 방황했다. 그러나 이렇게 무너져선 안 되었다. 다시 힘을 내 농장일에 집중했다. 혹시 여자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농장 상호는 그대로 놔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던 아이들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왔다. 빨리 집에 와보라는 것이다. 서둘러서 가보니 집 현관문에 법원 집행관 명의로 ‘강제집행예고장’이 붙어있다. 청천벽력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집행관 사무실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다.
그 경위는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집 나간 여자가 그녀 명의의 모든 재산을 누군가에게 팔았는데, 남자와 아이들이 살고 있던 아파트마저 팔아넘긴 것이었다. 매수인은 남자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농장에 묶여있던 남자가 소장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폐문부재’ 등이 원인이 되어 공시송달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당연히 무변론 패소 판결이 확정되어 강제집행을 당하게 된 것이다.
어찌 됐든, 사정이 급하게 됐다. 먼저 아이들과 살 집을 구해야 했다. 그래서 집행관과 매수인에게 사정했다. 집 구할 시간을 달라고.
두 달 뒤, 남자는 아이들과 함께 허름한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여자가 남자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미안하다고. 농장은 팔지 않겠다고. 남자는 허탈했지만, 간절했다. 문자를 보냈다. 돌아오면 안 되겠냐고. 그러나 더 이상 여자에게서 문자는 오지 않았다. 어쩌면 속고 속이면서 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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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