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불문 냉·온탕 오간 한·일…뇌관은 늘 ‘과거사’

입력 2025-06-22 09:51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이어진 양국의 굴곡진 역사가 수교 60주년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한·일은 이웃 나라이면서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선 영원한 적국이었다. 한·일 관계사는 반일(反日) 정서와 맞닿아 있어 과거사 문제는 보수·진보 정권을 불문하고 늘 변수가 돼 왔다.

정부 관계자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은 22일 “한·일 관계사를 돌아보면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내며 협력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사는 ‘65년 체제’에서 시작한다. 1945년 독립 이래 줄곧 삐걱거리던 한·일 관계는 제3공화국 출범으로 반전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을 맺고 ‘식민지배 배상’ 명목으로 8억 달러(한화 1조1808억 원)를 받았다. 경제 개발의 밑천이었다. 평가는 엇갈린다. 보수 진영은 경제 성장의 계기로 보지만 진보 진영은 과거사 문제를 봉합하지 않았다며 ‘굴욕 외교’로 폄하한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한·일 협력이 구조적으로 흔들렸던 시기다. ‘잃어버린 20년’을 겪는 일본보다 냉전 종식 후 존재감이 커진 중국과의 친교가 시급했다. 양국이 다시 마주 앉은 건 김대중정부 때다. 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한·일 협력관계의 발판이 됐다. 일본이 처음으로 문서를 통해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의 뜻을 명시한 게 성과였다.

이후에도 양국은 큰 틀의 협력관계는 지속하면서도 과거사 문제로 건건이 부딪혔다. 김대중정신을 이어받은 참여정부는 독도 소유권 문제로 충돌했다. 2011년 이명박정부 때는 위안부 배상 문제가 뇌관이 됐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위안부 배상 문제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강경 노선을 택한 게 화근이었다. 다음 해 이 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찾았다. 이후 양국의 셔틀 외교와 통화스와프(통화 교환)가 종료됐다.

2010년대 중후반에도 한·일 관계는 살얼음판을 걸었다. 2015년 박근혜정부는 일본이 10억엔(약 93억원)을 출연하는 조건으로 위안부 배상 협상을 타결했지만, 반일 정서는 어느 때보다 악화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전후 70주년 담화는 기름을 끼얹었다.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대신 “전쟁 중 많은 여성의 존엄과 명예가 상처받았다”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2018년은 한·일 관계사의 변곡점으로 꼽힌다. 문재인정부는 전 정부가 타결한 위안부 협상을 번복했다. 같은 해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확정판결을 내리면서 한·일 관계는 극으로 치달았다. 일본은 2019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감행했고, 한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았다.


한·일 관계는 경색 국면을 이어오다 윤석열정부 들어 해빙기를 맞는 듯했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12년 만에 셔틀 외교 재개에 합의했다. 그러나 일본의 무성의한 사도 광산 추도식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악재가 됐다.

외교부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북핵 문제 등 일본과 함께 목소리 내야 하는 현안이 늘어 한·일 협력이 중요한 시기”리며 “과거사 문제는 반일 정서를 자극할 수 있어 예민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